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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관한 글

숨 이야기

by 책벌레아마따 2023. 1. 16.

숨 이야기

 

숨의 사전적 정의는 사람이나 동물이 코나 입으로 공기를 들이마시고 내쉴 때의 기운이다. 숨은 다른 말로 호흡이다. ()는 날숨이고 흡()은 들숨이다.

 

그런데 사람이나 동물만 숨을 쉬는 것이 아니다. 식물도 숨을 쉰다. 식물이 호흡할 때 발생하는 이산화탄소와 뿌리로부터 흡수한 물이 햇빛과 반응하면 녹말이나 포도당으로 바뀐다. 이것을 식물의 광합성 작용 또는 탄소 동화 작용이라 한다. 광합성 작용은 햇볕이 내리쬐는 낮 동안 식물의 잎에 있는 엽록체에서 이루어진다. 광합성 과정에서 부산물로 만들어진 산소는 공기 중으로 방출되어 사람에게 이롭게 쓰인다.

 

 숨을 쉬지 않으면 생명을 이어갈 수 없는 것은 사람이나 식물이 다를 바 없다. 다만 사람은 식물의 호흡과는 반대 과정을 거친다. 호흡기관인 허파()를 통해 외부로부터 산소를 받아들이고 몸 밖으로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몸속에 들어온 산소는 에너지 대사 작용에 관여한다. 우리가 섭취한 음식물은 산화되어 포도당으로 바뀌는데, 포도당이 물과 이산화탄소로 연소되는 과정에서 에너지가 만들어진다. 이 에너지는 일차적으로 우리 몸속 세포에 공급되고, 남은 에너지는 열의 형태로 세포 내에 발산되어 체온을 유지시킨다. 결과적으로 숨은 사람의 생명 현상을 유지시키는 근간이라 할 수 있다.

 

 사람의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미생물 역시 숨을 쉰다. 미생물 중에는 산소를 좋아하는 호기성 미생물도 있고 무산소호흡을 하는 혐기성 미생물도 있다. 간장· 된장· 고추장· 청국장 등의 전통 장류나 김치· 젓갈· 식초· 치즈· · 포도주· 위스키, 막걸리와 같은 발효식품들에 대해 흔히 숨을 쉰다고 표현한다. 이와 같은 현상은 그 안에 살아 있는 미생물이 호흡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예를 들어 알코올 발효는 효모의 호흡으로 이루어지고, 젖산 발효는 유산균의 호흡으로 이루어진다. 발효라 함은 미생물이 가진 효소를 이용하여 유기물을 분해시키는 과정이다.

 

 미생물로부터 만물의 영장인 사람에 이르기까지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들은 쉼 없이 호흡한다. 생명체의 삶과 죽음이 호흡지간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지 못하거나 숨을 내뱉고 다시 들이마시지 못하면 그것으로 생명은 다한다. 그러므로 세상에 숨보다 중요한 것이 없.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연 우리는 얼마나 숨에 대해 고마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가.

 

 분하고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실의와 절망에 빠지면 우리 몸속에는 부정적 변화가 발생한다. 몸 밖에서 일어난 일들에 마음이 반응하면서 내면의 균형까지 흐트러지고 마는 것이다. 비상 상황에서는 누구라도 평상심을 잃기 쉽다. 하지만 그러한 상황일수록 요지부동의 고요한 마음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첫 번째 화살은 맞더라도 두 번째 화살은 맞지 말라는 말도 그런 의미다. 온갖 문제적 상황 속에서도 마음이 휘둘리지 않도록 숨을 보살펴야 하는 이유가 있다. 그것이 결국 하나 뿐인 목숨을 지키는 길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내면에서 화가 생성되는 과정을 객관적인 입장에서 면밀하게 지켜보자. 화가 이는 순간 호흡이 흔들리는 것을 스스로 알아차린다면 화가 불덩어리처럼 번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내 마음 안에 거울처럼 맑고 잔잔한 명경지수(明鏡止水)가 있다고 상상해 보라. 세상 어떤 더러움이나 추함에도 물들지 않을 옹달샘 말이다. 그 옹달샘이 몸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들로 말미암아 일렁이지 않도록 하라.

 

 지금 당장 코끝에 손을 대어 보면 누구나 따스한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숨이 붙어 있는 한 우리는 살아 있는 존재다. 지금까지 우리들의 관심 밖에 있었던 이 가냘프고 보잘 것 없는 숨이 사실은 생명을 생명답게 만드는 가장 위대한 기적이다. 숨을 대하는 마음 자세에 따라 삶의 겉모습이야 어떠하든 누구라도 내적으로 충만한 삶을 살 수 있다. 숨과 영혼과 성령은 모두 히브리어로 같은 단어인 루아(Ruah)’. 숨이 붙어 있는 한 우리는 더 이상 단순한 육적인 존재가 아니다.

 

 굳이 선방(禪房)에 들어가 정좌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숨이 어떻게 자신의 몸을 들락날락하는지는 알고 있어야 한다. 조주 선사의 스승인 중국 당나라 때의 남전 선사는 평상심이 도라 했다. 깨달음을 이루려면 평상심을 유지해야 하고 그러려면 숨을 고이 다루는 법부터 배워야 할 것이다.

 

2015년 12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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