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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관한 글

129인의 슬픈 영혼을 추모하며

by 책벌레아마따 2016. 11. 1.


                                 129인의 슬픈 영혼을 추모하며

 

                                                                          2016년 11월 1일

 

  최근 TV 모 시사고발 프로그램을 통해 대구시립 희망원의 민낯이 적나라하게 공개되었다. 영리 목적의 여타 시설들과는 차별화되었을 거라 믿었던 공간에서 자행된 백태에 시청자들의 공분이 들끓고 있다.

 

 ‘희망원1958년 개원한 뒤 대구시로부터 운영권을 위탁받은 천주교 대구대교구가 1980년 이후 줄곧 관리해 온 사회복지시설이다. 직원 155명이 1150명의 노숙인과 장애인을 돌보는(?) 이곳에 해마다 100억 가까운 혈세가 지원되었다고 한다.
 

 방송 내용에 따르면 사회적 약자를 위해 희망의 산실이 되어야 할 이곳에서 지난 2년 반 동안 전체 거주인(생활인)10퍼센트가 넘는 129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또한 시설 관계자들의 암묵적 동의하에 거주인을 대상으로 무자비한 폭행과 감금 및 노동력 착취, 직원들의 시설 관리 태만과 급식비 횡령 등이 지속되었다. 이는 어떠한 변명도 용납될 수 없는 반인륜적 가혹 행위로써, 거주인 사망과 시설 내에서 벌어진 도덕적 일탈과의 관련성을 배제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게다가 동일한 운영 주체, 동일한 시스템 아래 장기간 시설이 유지된 정황으로 볼 때 이전에도 비슷한 상황이 전개되었을 개연성이 농후하다.

 

 법을 준수하는 모든 이에게는 신분과 지위에 상관없이 최소한의 생존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과 배려는 국가가 져야 할 도덕적 책무이기도 하다. 이들은 단순한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권리를 가진 우리 사회의 동등한 구성원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법치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이 같은 인권 유린의 현장을 방치한 채 사회 정의를 논하는 것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이들이 비록 우리 사회의 아픈 손가락이라 해도 별도의 공간에 격리시켜 집단 관리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그보다는 소규모 거주시설에서 비장애인들과 함께 생활하는 그룹 홈제도의 확산을 제안한다. 자립이 가능한 경우 장애 정도에 맞는 직업 훈련이나 재활 훈련을 실시함으로써 스스로 삶의 질을 개선시켜 나가도록 유도해야 한다. 장애를 안고 태어났다거나 궁핍하다는 이유만으로 차별받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시설 장애인 못지않게 재가 장애인의 사정도 절박하다. 예를 들어 간단한 외출마저도 온갖 위험 상황에 맞닥뜨리는 모험을 감당해야 한다. 화장실 이용의 두려움으로 외출 직전에는 물조차 마음대로 마시지 못하고, 보도의 높낮이 편차 때문에 휠체어 이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밖에 출입문턱이 높은 버스나 지하철역의 가파른 계단 등의 장애물이 도처에 널려 있다. 이들의 불편과 고통을 줄여 줄 해결책 마련이 시급하다.

 

 예전에 시각장애인을 위한 봉사자 교육에 참여한 적이 있다. 21조가 되어 안대로 눈을 가린 채 명동과 퇴계로 주변의 복잡한 도심을 걷는 체험이 포함되어 있었다. 자발적인 선택에 따라 신체 기능 가운데 일부를 잠시 정지시켰을 뿐인데도 불안과 공포가 따랐다. 하물며 절망의 나락에서, 산 채로 지옥을 체험한 희망원형제자매들의 고통은 말해 뭣하랴. 동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미안하고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가 없다.

 

 지금 이 시간 우리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인권 사각지대에서 신음하는 이웃이 있지나 않을지 우려된다. 어쩌면 지금까지 수면 밖으로 드러난 인권 침해 사례들은 빙산의 일각일지도 모른다. 부디 이번 기회에 성역 없는 수사와 철저한 진상 조사가 이루어져 우리 사회의 숨겨진 야만성을 발본색원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한과 눈물이 서린 희망원에 희망의 작은 불씨가 타오르기를 기대하며, 눈물 속에 머물다 눈물 속에 떠난 슬픈 영혼들이 천국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우리 모두 내일을 장담할 수 없는 예비 장애인이며, 아침 햇살에 맥없이 스러지는 풀잎 끝의 이슬방울 같은 존재임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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