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쇼크’에 관한 단견(短見)
2016년 11월 15일
블랙 코미디란 이지러진 인간의 본성이나 비틀린 사회를 해학과 풍자로 풀어낸 희극을 말한다. 그런데 연극 무대에서나 봄직한 블랙 코미디 같은 일들이 최근 대한민국에서는 일상사가 되었다. 단언컨대 어떤 드라마, 어떤 버라이어티 쇼도 이보다 더 극적일 수는 없다.
‘최순실 게이트’가 국내외적으로 폭발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킨 데는 전근대적 괴담의 창궐과도 무관하지 않을 듯하다. 무역규모 세계 7위의 IT강국에서 뜬금없이 주술, 사이비, 샤머니즘, 유체이탈, 빙의, 우주의 기운(천기) 같은 비현실적 언어유희가 유행하다 보니 이런저런 추측이 나올 법도 하다.
40년 지기 두 여성의 순정한 우정을 뉘라서 탓하겠는가. 문제의 발단은 단순히 심정적 표현을 공유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은 데 있다. 사실 그녀의 이름이 주는 뉘앙스는 사상 초유의 괴이한 사건의 주모자라기보다는, 시골 마을의 푸근한 이웃집 누이를 연상케 한다. 하지만 그녀의 거친 생각과 말과 행실은 양파껍질처럼 까면 깔수록 시시각각 경이로움을 선보이며, 세계인에게 ‘어글리 코리아’의 이미지를 단숨에 부각시키는 능력을 과시했다. 강남 일대 동네목욕탕이나 병원 등지에서 갑질 노릇이나 하고 사모님 코스프레나 즐기며 그들만의 리그로 끝냈더라면 이런 변고는 없었으련만, 판을 키워도 너무 키웠다.
시절이 하수상하여, 남성접대부를 수시로 호출했다느니 1회 출장에 수백만 원의 팁을 쥐어줬다느니 마치 삼류 통속잡지에나 나올 법한 비하인드 스토리들까지 호사가들의 안주거리가 되고 있다. 차마 그런 질펀한 이야기는 논외로 하고라도 절대 묵과할 수 없는 것은 권력을 등에 업고 기세등등했던 그녀의 행보다.
청와대 정문으로 거침없이 나들고, 연설문 고치기를 취미로 삼고, 국가비밀문서를 열람하고, 대기업으로부터 기부금을 추렴하고, 이권 사업을 챙기고, 페이퍼 컴퍼니를 차리고, 딸의 부정입학에 관여하는 등 분수를 망각하여 화를 자초했다. 그녀의 딸 역시 ‘88만 원 세대’ 또래들을 향해 ‘돈도 실력’이라고 일갈했다. 과연 해외도피 중에도 몇 사람의 한 끼 식사비로 80여만 원에 팁까지 얹어 지불했다던 그 어머니에 그 딸이다. 또한 그 변호인은 세상의 풍파를 견뎌 낼만한 나이가 아니라며 의뢰인 딸에 대한 면죄부를 주장했다. 풍파를 일으킨 장본인한테 풍파의 책임은 못 지우겠단다.
그러나 그 모든 시시비비에 앞서, 비선 세력의 허황된 아이디어를 모티브로 하여 창조경제니 문화융성이니 그럴싸한 오방색을 덧씌우고, 비논리적 어설픈 감성 정치로 얼버무려 국민을 우롱하기까지, 공조인지 방조인지를 자행한 국정 책임자의 무능과 무책임과 무분별에 헛웃음이 나온다. 그저 부유한 강남 사모님과 주변인들이 일사분란하게 나라의 곳간을 넘보며 국권을 농단하고 국민을 능멸하는 동안, 청와대를 드나든 그 숱한 인사 중 누구 하나 국가의 장래를 염려하여 목을 내놓고 간언한 이가 없더라는 사실이 또한 우리를 슬프게 한다.
사리사욕과 당리당략에 따라 이합집산 하는 정치 소인배들의 행태에 환멸과 넌더리를 느끼던 차에, 설상가상으로 이 모진 꼴을 당한 오천만 국민의 허탈감과 무력감을 누가 책임질 것인가. 이른바 스카이 졸업생마저 9급 공무원 시험을 기웃거리는 팍팍한 현실 속에, 휴대폰지킴이나 의상나르미 등의 허드렛일을 수행하면서도 3,4급 행정관 지위를 부여받은 특정인을 보며 이 나라 청년들이 느껴야 할 자괴감은 어찌 치유할 것인가.
조선왕조 계보도 가물가물한 일반인들이 왜 그녀의 풍진 과거사와 가계도를 기억해야 하는가. 뼈 빠지게 일해 또박또박 나라에 세금 바친 죄밖에 없는 국민이 왜 피해자가 되어야만 하는가. 그렇더라도 우리는 벌떡대는 가슴을 애써 누른 채 각자의 위치에서 본분을 다할 것이다. 늘 그래왔듯 개나 돼지로 치부되는 99퍼센트 민초들의 땀과 눈물로써만이, 이 땅을 온전히 지켜 낼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마지막 남은 자존심인 양 명품으로 치장한 그녀가 검찰에 출두하던 날, 예상대로 내외신 기자들의 불꽃 튀는 취재 경쟁이 벌어졌다. 그 와중에 한 여인의 영광과 치욕의 삶을 침묵으로 웅변하듯, 북새통에 벗겨진 그녀의 고급 브랜드 신발 한 짝이 검찰청사 현관 앞에 덩그마니 놓였다. 신발과 의복이 무슨 죄가 있을까마는 주인 잘못 만난 죄로 싸잡혀 도마에 오르는 촌극도 함께 벌어졌다.
【“청와대에 오래 있을수록 현실과는 더욱 멀어지고 아첨성 보고에 눈과 귀가 멀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그건 이해합니다. 전임자들도 그러했으니까요. 그러나 전대미문의 위기를 맞이한 한국에서, 주권자(국민)들은 대통령의 그런 현실 파악 무능력을 참아낼 여유가 지금은 없습니다.”】 대학원 시절 학위논문으로 골머리를 썩을 때 용기와 격려를 주셨던, 모교의 김 모 교수가 권력을 질타한 글의 일부다. 그간의 정권 교체에도 불구하고 이제도 빛바래지 않은 고언(苦言)이라 인용해 보았다. 이제 공은 모 종편 방송사와 국민으로부터 검찰로 넘겨졌다. 법치국가 대한민국답게 검찰이 아직 시퍼렇게 살아있음을, 권력의 시녀가 아닌 국민의 공복으로서의 그 위상과 실력을, 한 번 제대로 보여야 하지 않겠는가.
물은 이미 엎질러졌다. 이 나라가 살 길은 오직 ‘사즉생(死卽生)’의 결단으로 모든 곳의, 모든 부패를 척결하겠노라 대내외에 천명하고 비정상적 국가 시스템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데 분골쇄신하는 것뿐이다. 국격이 조롱거리가 된 심정이야 참담하지만, 건국 이래 남녀노소 온 국민이 대동단결할 수 있게 된 것이 뜻밖의 수확인지라 아직 희망의 끈을 놓을 때는 아닌 듯하다. 제발 더 이상은 그 누구도 순실(淳實)한 국민 여러분을 시험에 빠뜨리지 말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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