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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관한 글

오! 밥

by 책벌레아마따 2017. 10. 1.

오! 밥

 

지난날 보릿고개를 한 번이라도 체험했다면 뼈저린 배고픔을 기억할 것이다. 연중 풍족한 날이 며칠이나 되었을까만 춘궁기에는 더구나 굶기를 밥 먹듯이 하니 밥은 고사하고 멀건 죽이라도 양껏 먹기를 소원했을지 모른다. 배를 주린 기억이 딱히 없는 서울내기도 쌀 한 톨의 소중함은 잘 알고 있다.

 

이와 같이 나무껍질로 쑨 피죽으로 연명하기도 했던 윗세대의 고난사이건만 호랑이 담배 피울 적 전설쯤으로 치부된 지 이미 오래다. 밥이 없으면 라면을 먹지 그랬느냐고 응수하는 철부지 신세대에게는 그저 못미더운 옛이야기일 뿐이다. 하기야 뱃가죽이 등에 달라붙는 고통을 겪어 보지 못한 그들을 탓할 일만도 아니다.

 

굶주림으로 쓰러지는 이들이 출몰하던 시절, 쌀은 사람의 목숨을 틀어쥔 생명줄이었다. 누구를 만나건 으레 하는 인사가 오죽하면 “식사하셨어요?”였겠는가. 그러니 논마지기라도 있는 집은 괜스레 목에 힘이 들어가고, 쌀알 가득한 항아리는 살림을 맡은 안주인의 자부심이었으리라. 배를 곯아 본 사람이 배고픈 사람의 심정을 헤아린다. 끼니때마다 쌀 한 줌을 덜어 절미 항아리에 따로 챙겼다가 어려운 이웃을 위해 내놓는 ‘좀도리’ 정신이야말로 가난과 결핍의 미학이 아닐 수 없다.

 

밥 한 그릇의 감동을 아는 사람은 안다. 부엌의 솥단지에서 모락모락 김이 오르고 밥 뜸 드는 냄새가 집안 가득 퍼질 즈음 배꼽시계도 때맞춰 밥 때를 알린다. 굳이 모친이 부르지 않아도 식구들은 밥상 앞으로 일사분란하게 모여든다. 된장 뚝배기에 숟가락을 번갈아 빠트려 가며 오순도순 식사를 나누노라면 위생관념은 희박해 보일지 모르나 한솥밥 식구의 정은 도타워졌다. 갓 지어 촉촉하고 찰진, 눈보다 더 하얀 쌀밥 한술 위에 구운 굴비 한 점을 얹어 목젖으로 넘기면 그 이상의 행복이 없었다.

 

그런데 금쪽같은 대접을 받던 쌀이 언제부터인지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었다. 핵가족화에 이어 맞벌이부부가 증가하고 외식문화의 광풍이 휘몰아치더니 급기야 일반 가정의 쌀 소비량이 반 토막 났다. 그새 소비자들의 입맛도 바뀌어 밥을 제치고 빵이나 국수에 대한 선호도가 급증했다. 이를 반영하듯 지난 10년간 벼 재배면적은 95.52만 ha에서 79.93만 ha로 감소했다. 다만 생산성 향상에 힘입어 생산량에는 큰 변화가 없고 쌀값은 하락했다. 전체 인구 대비 농가 인구의 비중 역시 1970년 44.7%에서 현재 5%대로 추락했다. 오늘의 농촌 공동화 현상은 애초 도시 산업화에 따른 농촌 인구의 유출에서 비롯되었다.

 

농업 정책의 우선 과제는 쌀값의 안정화로써 체계적인 수급 관리가 중요하다. 하지만 문제 해결은 간단치 않다. 매년 의무적으로 수입하는 물량과 국내 쌀 중에 소비하고 남은 재고량이 저장고에 쌓여 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생산량을 적정 수준으로 유지하면서도 묵은쌀의 소비를 촉진시킬 방안이 절실하다. 쌀을 이용한 떡, 국수, 빵, 술, 음료, 과자 등의 가공식품 산업을 확대함과 동시에 질적 성장을 꾀해야 한다. 신세대의 입맛을 사로잡을 퓨전 메뉴 혹은 군부대나 학교 등 단체급식 대상의 맞춤형 메뉴도 기대된다. 가축의 조사료로 덜 익은 벼인 총채벼의 공급을 늘리고,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직거래 방식을 통해 가격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도 쌀 소비 촉진을 위한 하나의 대안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농기계의 발달로 상당 부분 노동력의 생략화가 이루어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농사일은 고되다. 그러니 젊은 농부를 찾기 힘들고 논을 갈아엎을지 말지 농부의 딜레마는 깊어진다. 그나마 식량 전선의 최일선에서 고군분투 중인 현역 농부들마저 논농사를 작파하겠다고 나서면, 식량의 무기화니 식량 전쟁이니 하는 피상적인 말들이 더 이상 엄포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 쌀값 하락 시 정부가 농가 소득의 손실을 보전해 주는 ‘변동직불금제’에 대한 논란이 뜨거운데, 쌀농사의 상징성에 비춰 볼 때 경제 논리로만 따질 일은 아니다.

 

도시민들의 정신적 뿌리이자 마음의 안식처인 농촌 재건의 당위성은 차고 넘친다. 어떻게든 농민들의 처진 어깨를 곧추세우고 들녘에 신바람을 불어넣어야 한다. 밥은 단순히 배를 채우기 위한 음식이 아니다. 밥을 대체하는 먹을거리가 넘쳐난다 해도 한 그릇의 밥에 내재된 가치는 결코 퇴색될 수 없고 퇴색되어서도 안 된다.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가, 내 덕행으로는 받기 부끄럽네.’로 시작되는 오관게(五觀偈)는 불가에서 공양 전에 외는 게송 즉 식사 전 기도다. 모쪼록 우리 땅에서 나고 자란 쌀밥을 삼시세끼 잘 챙겨 먹고 밥심을 기르자. 그리고 밥값은 하는 사람이 되자.

 2017년 9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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