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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관한 글

자식바라기

by 책벌레아마따 2017. 10. 25.

자식바라기

 

없는 살림에 생선 반찬이라도 밥상에 오르는 날이면 으레 살집 두툼한 몸통은 남편과 자식 차지였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아들은 유독 대가리만 찾던 생전의 모친을 떠올렸다. 그 뒤로 어머니 기일마다 제사상에 정성껏 올리는 제수 한 가지는 딱 정해졌다. 바로 생선 대가리! 우스갯소리인 줄 뻔히 알면서도 들을 때마다 가슴이 짠해진다.

 

희한하게도 세상의 어머니들이 세상의 자식들과 기호가 정반대인 것은 그녀들이 유별난 종족이라서가 아니다. 자식을 위해 포기했거나 양보했거나 둘 중 하나다. 즉 자신은 아랑곳없고 자식에게만은 좋은 것을 주고 싶은 희생의 발로다. 말 못하는 짐승도 자기 새끼를 살뜰히 돌본다. 어미가 자식을 위해 헌신하는 것은 본능이다. 차마 거부할 수 없는, 유전자 깊숙이 각인된 어미의 숙명이다. 신이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 어머니를 만든 바로 그 이유다.

 

그런데 어머니도 인간인지라 엇나가는 자식을 보면 울컥할 때가 있다. 그러다 보니 ‘자식 키워봐야 아무 짝에도 소용없다, 너를 낳은 게 내 인생 최대의 실수다, 너도 이다음에 너하고 똑 닮은 자식을 낳아 봐라’ 같은 모진 말을 기어이 내뱉는 어머니도 없지 않다. 물론 자식 키워 무슨 부귀영화를 보자는 게 아니고 그저 저 잘 되라고 한 말인 줄은 잘 안다. 하지만 자식이 아무리 미운 짓을 해도 뒤돌아서면 잊을 거면서 좀 더 너그러웠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아무리 화가 나도 할 말과 못할 말은 가렸어야 했는데, 홧김에 쏟아놓고 난 어머니는 더욱 후회막급일 것이다.

 

만약 자식을 키운 보상이란 게 있다면 어머니들은 이미 그것을 다 받아 누렸는지도 모른다. 자식 목구멍으로 밥이 넘어가는데 왜 어미 배가 불렀던 것일까. 얼굴에 솜털도 채 가시지 않은 갓난쟁이의 배냇짓에 절로 미소가 번졌던 기억은 없을까. ‘엄마’를 부르며 품으로 달려드는 자식을 힘껏 안고 가슴이 뛰었던 순간은 또 없었을까. 뼈와 살이 녹아내릴 것 같은 가슴 절절한 사랑을 자식이 아니면 어디서 누구와 해 보겠는가. 세상 어떤 남자도 엄마가 자식에게 하듯 집요한 사랑은 못 견딘다. 사랑하는 것도 어렵지만 사랑을 받아주는 것도 쉽지 않은 노릇일 터인데, 자식은 극성뗑이 엄마의 사랑을 내치지 않고 어찌 대접해도 웬만하면 꾹꾹 참아 준다. 왜 물질적인 봉양만을 효도라 생각하는가. 설령 자식이 엄청 속을 썩이더라도 태어나 한번쯤 인욕 수행을 해 볼 요량이면 이 또한 좋은 기회가 아니겠는가.

 

자식을 키우다 보면 과거에는 자신도 어느 누군가에게 애물단지였다는 후회가 몰아친다. 그럼에도 사는 게 바쁘다는 핑계로 자신의 어머니는 늘 뒷전이다. 여자는 자식을 낳고 어머니가 되고나서야 비로소 어머니를 이해한다. 하지만 세월 지나 감사와 회한의 뜨거운 눈물을 흘릴 즈음 당신은 이미 어딘가로 흩어진 지 오래다. 왜 내리사랑은 되고 치사랑은 안 되는지 한탄스럽다. 자식은 미성숙한 어른을 철들게 하는 영적 스승이다.

 

요즘 미혼남녀들 사이에서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말이 떠돈다. 그 바람에 출산율은 세계 최하위다. 나 아닌 다른 존재를 위한 희생과 헌신에 인색해서인지, 자식을 괴로움의 대상으로만 여겨서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서 묻는다. 무엇 때문에 땀 흘려 일하고 악착같이 돈을 모으려 하는가. 삶이 아무리 힘들고 비참해도 오래오래 울타리가 되어 주고 싶은 자식이 있어 모든 시련을 참고 견딜 수 있다. 어머니는 자식을 위해서라면 아파도 안 되고 약해져도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식은 어머니의 삶을 지탱해 주는 버팀목이기도 하다.

 

어머니가 그 어머니의 사랑을 먹고 성장한 것처럼 이제는 자식에게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되어야 할 차례다. 간섭과 구속과 집착이 아닌 온전한 사랑으로써 말이다. 어머니의 사랑은 한 잔의 진한 에스프레소다. 어머니의 사랑은 퍼내고 퍼내도 마르지 않는 옹달샘이다. 표피적 사랑이 아닌 내면 깊숙이에서 배어나오는 농밀한 사랑이다. 그리움이 깊어져 아픔이 된다. 사랑이 깊어져 아픔이 된다. 자식을 향한 어머니의 사랑은 그래서 늘 가슴 시리도록 아프다. 어머니는 자식의 행복을 자신의 행복보다도 더 기뻐해 줄 세상 유일무이한 존재다. 솔직히 어머니의 사랑이 아무리 지고지순하다한들 그것을 받아 줄 자식이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러니 자식이란 곁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한없이 고맙고 귀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    

 2017년 10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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