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바라기
없는 살림에 생선 반찬이라도 밥상에 오르는 날이면 으레 살집 두툼한 몸통은 남편과 자식 차지였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아들은 유독 대가리만 찾던 생전의 모친을 떠올렸다. 그 뒤로 어머니 기일마다 제사상에 정성껏 올리는 제수 한 가지는 딱 정해졌다. 바로 생선 대가리! 우스갯소리인 줄 뻔히 알면서도 들을 때마다 가슴이 짠해진다.
희한하게도 세상의 어머니들이 세상의 자식들과 기호가 정반대인 것은 그녀들이 유별난 종족이라서가 아니다. 자식을 위해 포기했거나 양보했거나 둘 중 하나다. 즉 자신은 아랑곳없고 자식에게만은 좋은 것을 주고 싶은 희생의 발로다. 말 못하는 짐승도 자기 새끼를 살뜰히 돌본다. 어미가 자식을 위해 헌신하는 것은 본능이다. 차마 거부할 수 없는, 유전자 깊숙이 각인된 어미의 숙명이다. 신이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 어머니를 만든 바로 그 이유다.
그런데 어머니도 인간인지라 엇나가는 자식을 보면 울컥할 때가 있다. 그러다 보니 ‘자식 키워봐야 아무 짝에도 소용없다, 너를 낳은 게 내 인생 최대의 실수다, 너도 이다음에 너하고 똑 닮은 자식을 낳아 봐라’ 같은 모진 말을 기어이 내뱉는 어머니도 없지 않다. 물론 자식 키워 무슨 부귀영화를 보자는 게 아니고 그저 저 잘 되라고 한 말인 줄은 잘 안다. 하지만 자식이 아무리 미운 짓을 해도 뒤돌아서면 잊을 거면서 좀 더 너그러웠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아무리 화가 나도 할 말과 못할 말은 가렸어야 했는데, 홧김에 쏟아놓고 난 어머니는 더욱 후회막급일 것이다.
만약 자식을 키운 보상이란 게 있다면 어머니들은 이미 그것을 다 받아 누렸는지도 모른다. 자식 목구멍으로 밥이 넘어가는데 왜 어미 배가 불렀던 것일까. 얼굴에 솜털도 채 가시지 않은 갓난쟁이의 배냇짓에 절로 미소가 번졌던 기억은 없을까. ‘엄마’를 부르며 품으로 달려드는 자식을 힘껏 안고 가슴이 뛰었던 순간은 또 없었을까. 뼈와 살이 녹아내릴 것 같은 가슴 절절한 사랑을 자식이 아니면 어디서 누구와 해 보겠는가. 세상 어떤 남자도 엄마가 자식에게 하듯 집요한 사랑은 못 견딘다. 사랑하는 것도 어렵지만 사랑을 받아주는 것도 쉽지 않은 노릇일 터인데, 자식은 극성뗑이 엄마의 사랑을 내치지 않고 어찌 대접해도 웬만하면 꾹꾹 참아 준다. 왜 물질적인 봉양만을 효도라 생각하는가. 설령 자식이 엄청 속을 썩이더라도 태어나 한번쯤 인욕 수행을 해 볼 요량이면 이 또한 좋은 기회가 아니겠는가.
자식을 키우다 보면 과거에는 자신도 어느 누군가에게 애물단지였다는 후회가 몰아친다. 그럼에도 사는 게 바쁘다는 핑계로 자신의 어머니는 늘 뒷전이다. 여자는 자식을 낳고 어머니가 되고나서야 비로소 어머니를 이해한다. 하지만 세월 지나 감사와 회한의 뜨거운 눈물을 흘릴 즈음 당신은 이미 어딘가로 흩어진 지 오래다. 왜 내리사랑은 되고 치사랑은 안 되는지 한탄스럽다. 자식은 미성숙한 어른을 철들게 하는 영적 스승이다.
요즘 미혼남녀들 사이에서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말이 떠돈다. 그 바람에 출산율은 세계 최하위다. 나 아닌 다른 존재를 위한 희생과 헌신에 인색해서인지, 자식을 괴로움의 대상으로만 여겨서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서 묻는다. 무엇 때문에 땀 흘려 일하고 악착같이 돈을 모으려 하는가. 삶이 아무리 힘들고 비참해도 오래오래 울타리가 되어 주고 싶은 자식이 있어 모든 시련을 참고 견딜 수 있다. 어머니는 자식을 위해서라면 아파도 안 되고 약해져도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식은 어머니의 삶을 지탱해 주는 버팀목이기도 하다.
어머니가 그 어머니의 사랑을 먹고 성장한 것처럼 이제는 자식에게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되어야 할 차례다. 간섭과 구속과 집착이 아닌 온전한 사랑으로써 말이다. 어머니의 사랑은 한 잔의 진한 에스프레소다. 어머니의 사랑은 퍼내고 퍼내도 마르지 않는 옹달샘이다. 표피적 사랑이 아닌 내면 깊숙이에서 배어나오는 농밀한 사랑이다. 그리움이 깊어져 아픔이 된다. 사랑이 깊어져 아픔이 된다. 자식을 향한 어머니의 사랑은 그래서 늘 가슴 시리도록 아프다. 어머니는 자식의 행복을 자신의 행복보다도 더 기뻐해 줄 세상 유일무이한 존재다. 솔직히 어머니의 사랑이 아무리 지고지순하다한들 그것을 받아 줄 자식이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러니 자식이란 곁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한없이 고맙고 귀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
2017년 10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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