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충제 달걀 파동 유감
동서양을 막론하고 일주일에 적어도 한두 번은 식탁에 올리는 식재료가 바로 달걀이다. 달걀이 대중적 인기를 얻은 데는 완전식품의 대명사라는 인식이 한몫했을 듯하다. 맛도 맛이려니와 가성비로 따져도 이만한 식품은 흔치 않다.
누구나 달걀에 얽힌 추억 한 꼭지는 가슴에 묻고 살아간다. 유년 시절 학교 앞 좌판에서 들고 온 병아리의 돌연사에 동심은 멍들고, 그 뒤로 얼마간 달걀 반찬을 멀리했던 기억은 꽤나 씁쓸하지만 말이다. 달걀은 예전 학생들 도시락 반찬으로 인기 만점이었다. 하얀 쌀밥 위에 노른자위 터질 듯 말 듯 익혀 낸 달걀 프라이를 얹은 도시락과 함께 등교한 날은 왠지 점심시간이 더뎠다. 학교 소풍날에는 삶은 달걀과 사이다가 환상의 콤비였다. 가족이나 친구와 기차 여행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홍익회 직원이 잡다한 간식거리가 담긴 수레를 끌고서 잊을 만하면 한 번씩 객실 통로에 나타나는데 빨간 망에 담긴 삶은 달걀이 보이지 않는 때는 없었다. 도시의 흔한 골목 풍경 가운데 하나는 ‘계란이 왔어요. 싱싱한 계란이 왔어요.’ 쩌렁쩌렁한 마이크 소리를 앞세우고 동네 주택가를 누비던 달걀 트럭이다.
달걀의 활용도는 무궁무진하다. 제과와 제빵, 김밥과 잡채의 속 재료, 냉면이나 떡국의 고명, 오물라이스 같은 음식에 달걀이 빠진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전을 부칠 때는 달걀 물만 곱게 입혀도 한결 태가 난다. 라면을 끓일 때도 달걀 한 개를 풍덩 빠뜨리지 않으면 라면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그런데 최근 국민 반찬인 달걀을 가지고 장난친 사건이 온 국민을 분노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닭 진드기를 잡겠다며 산란계에 살포한 피프로닐 성분이 닭의 산란 장기를 거쳐 달걀에서 검출된 것이다. 피프로닐은 제초제나 반려견에 한해 허용된 살충제다. 방사한 닭이 흙 목욕을 하며 스스로 진드기를 떼어내는 데 반해, 가로 세로 30cm의 철장 안에 갇힌 공장 닭은 살충제 세례를 맞으며 성장하고 알을 생산한다. 달걀 농장주는 그간 정부로부터 살충제 사용이나 달걀의 잔류농약에 관한 어떤 지침도 받은 적이 없노라 항변한다. 오늘의 살충제 달걀 파동은 일찌감치 예견된 인재라고밖에 이야기할 수 없다.
여론이 들끓자 정부는 대형할인점에서 달걀 판매를 전면 금지하는 사상 초유의 초강수 조치를 내렸지만 그 후폭풍 또한 심상치 않다. 전국 산란계 농장에 대한 전수 조사과정에서 제기된 논란 때문이다. 불시에 무작위로 시료를 채취해야 하는 원칙을 깨고, 농장주에게 검사 사실을 사전 공지한 것도 모자라 검사 시료를 농장주가 직접 제출토록 했다. 이런 사실이 여론을 통해 알려지지 않았더라면 소비자들에게 2차 피해가 돌아갔을 것이다.
충격적인 일은 이뿐만이 아니다. 친환경 마크를 획득한 대다수 농장에서도 살충제 살포가 버젓이 이루어진 사실이다. 이른바 ‘농피아’ 비리, 즉 농축산 분야의 퇴직공무원들이 친환경 민간인증업체에 재취업한 뒤 인증 시스템에 관여함으로써 이런 관행이 묵과될 수 있었다. 친환경 유기농 달걀은 일반 달걀에 비해 가격이 두 배 가까이 비싸지만 가족의 건강을 생각해 아낌없이 지갑을 열었던 소비자만 봉이 된 셈이다. 이번 파동으로 인한 가장 큰 손실은 친환경 인증 농축산물에 대한 소비자의 신뢰가 무너진 데 있다.
건강한 달걀과 고기를 얻기 위해서 닭 관리가 엄격해야 함은 두말 할 필요도 없다. 한국인이 즐겨먹는 배달음식 1위는 프라이드치킨이다. 연간 8억 마리, 1인당 평균 14마리 성인 기준 20마리를 소비한다고 하니 ‘치느님(치킨+하느님)’이 괜히 생긴 말이 아니다. 문제는 소비에만 급급할 뿐 동물복지에는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는 데 있다.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동물을 도축할 때 메카를 향해 눕히고 기도를 올린 뒤 고통을 최소화시키기 위해 단칼에 목을 쳐 숨을 끊는다. 현대에 와서는 시간적 제약 때문에 간단히 기도한 후 동물을 도살한다. 인간을 위해 희생된 닭과 그 밖의 무수한 동물들에게 감사함과 미안함이라도 한 번쯤 가지는 것이 최소한의 인간적 도리일 것이다.
살충제 달걀이 시중에 유통된다고 해서 집집마다 닭을 기를 수도 없고, 채소의 잔류 농약이 문제된다고 해서 집집마다 텃밭을 가꿀 수는 없는 노릇이다. 더 안타까운 것은 식품 안정성에 의문을 가지면서도 구입을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언제까지 생산자나 가공업자들이 먹을거리 가지고 장난치지 않기만을 바랄 것인가. 이제 국민 건강을 위해 지구 환경을 위해 먹을거리에 대한 인식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싼 것만 선호하기보다 합리적인 가격을 지불하고 온전한 먹을거리를 구입하되 그 대신 적게 소비하자. 품질 관리에 공을 들인 달걀을 먹으려면 그만큼 비싼 값을 지불하는 것은 당연하다. 성인 일인당 하루 단백질 섭취 권장량은 6,70g으로 손바닥 정도의 크기다. 성인병 예방을 위해서도 지나친 육류 섭취를 자제해야 한다. 또한 유제품까지 금하는 완전한 채식주의자인 비건(Vegan)은 몰라도, 유제품은 자유롭게 섭취하는 베지테리언(Vegetarian)은 한번 도전해 봄직하다.
‘줄탁동시’의 일차적 의미는 달걀 안에서 병아리가 부화할 때 부리로 안쪽을 톡톡 쪼면 밖에서 어미닭이 그 소리를 듣고 동시에 알을 쪼는데 그러다 알이 깨지면서 병아리가 세상 밖으로 나오는 것을 말한다. 무정란의 경우는 별개로 치더라도 유정란에는 생명체의 신비로운 생명 현상이 그대로 담겨 있다. 닭 도살이 불가피하고 달걀 소비는 어쩔 수 없지만 생명의 소중함만은 기억하는 것이 천지를 창조하신 조물주의 섭리에도 합당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2017. 12.
'삶에 관한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복돌’이 출산에 얽힌 일화 (0) | 2018.02.10 |
---|---|
새해 복 많이 나누세요. (0) | 2018.01.11 |
한 해의 이모저모 (0) | 2017.12.15 |
'능력중심' 사회의 허와 실 (0) | 2017.11.26 |
자식바라기 (0) | 2017.10.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