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간 애마를 추억하며
2005년 4월
여간해선 귀가 시간을 어기지 않는 남편이 그날따라 아무 연락도 없이 늦어지는 것이 왠지 께름칙했다. 그리고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나도 모를 불안감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그때 전화벨소리가 요란스레 울려댔다. 쿵쾅거리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며 수화기를 들었다. 남편이었다. 자동차 접촉사고가 나서 수습 중인데 시간이 제법 걸릴 것 같다며 차는 정비소에 맡겨야 한다고 했다. 어쨌든 본인이 직접 전화를 걸어온 상황에 안도하며 귀가를 기다렸다.
참으로 시간이 더디 흐른 끝에 지친 모습으로 남편이 돌아왔다. 이윽고 떨리는 목소리로 사고 소식을 전하기 시작했다. 행주대교 북단에서 차바퀴가 빗길에 미끄러지며, 가드레일을 박고 튕겨져 나온 후에 뒤차와 접촉사고가 났다는 것이다. 사고 현장은 좀 전에 전화로 잠시 들은 내용과는 사뭇 다르게, 몹시 긴박하고도 위급한 상황이었던 듯했다.
남편은 20년 무사고 경력자답게 평소와 다름없이 방어운전까지 염두에 두면서 조심운전을 했다. 게다가 오랜 시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침저녁으로 오고가는 출퇴근길이라 눈을 감고도 훤하다. 그런데 일을 당하려고 그랬는지 어느 순간 갑작스레 자동차 바퀴가 전혀 제어가 되지 않더란다.
불행 중 다행으로 남편은 가슴과 뒷목만 조금 뻐근할 뿐 다른 신체적 이상은 없었다. 다만 자동차 핸들을 잡은 이후로 처음 겪는 대형 사고여서인지 심적 충격이 적지 않은 듯 보였다. 우리 차와 접촉사고가 난 뒤차도 차량에 경미한 흠집만 생긴 정도여서, 사고 처리과정은 어려운 점이 없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 애마였다. 사고 당일 우리 가족과 마지막 인연의 끈을 놓지 않으면 안 될 만큼 만신창이가 되었으니까 말이다. 누구라도 차를 그저 단순한 교통수단이라 여기지는 않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오랜 시간 주인과 더불어 온갖 데를 다니며 온갖 애환과 추억을 공유하는 녀석이 아닌가. 우리 차도 마찬가지다. 차에도 영혼이 깃들어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남편과는 한 몸처럼 움직이던 녀석이다.
그 긴박했던 위기의 순간에, 주인을 대신하여 자신이 온몸으로 충격을 흡수했기에 저토록 한 순간에 폐차장으로 내몰리는 운명에 놓인 것이 분명하다. 자기 생명줄이 끊어지는 줄도 모르고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주인의 생명을 지켜 낸 것이다.
사고 이튿날, 우리 차를 끌고 갔다는 일산 외곽에 자리한 견인차 사업장을 더듬더듬 찾아갔다. 그러나 그새 부천의 폐차장으로 넘겨진 뒤였다. 마지막 작별인사도 못하고 돌아서는 발걸음이 얼마나 허전했는지 모른다. 차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과 섭섭함을 어떻게 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너는 우리 가족에게 단순한 기계 덩어리가 아닌 그 이상의 존재였어. 너와 함께 동고동락한 만 십 년의 세월 동안 많이 행복했어.’라는 말을 꼭 전해 주고 싶었는데. ‘이제 우리 가슴에 너와의 추억을 고이 묻을게.’ 이 말도 꼭 들려주려고 했는데.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성하의 선종과 식목일 잇따른 산불로 인한 이재민들의 한숨에 이어 애마의 폐차에 이르기까지, T. S.엘리엇의 말처럼 4월은 우리 가족에게 잔인한 달로 오랫동안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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