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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을 위한 글

청춘 잔혹사

by 책벌레아마따 2017. 4. 12.

                                            청춘 잔혹사


                                                                  2017년 4월 11일


 소위 금은 수저 집안이 아닌 일반 서민가정이라면 자녀 뒷바라지가 여간일이 아니다. 서울에서 유학 중인 자녀를 둔 가정의 경제적 고통은 더하다.


 사실 등록금은 부대비용에 비하면 잽도 안 된다. 올봄 서울 대학가 원룸 평균 시세는 보증금 1450만 원에 월세 49만 원이다. 여기에 다달이 관리비, 각종 공과금, 인터넷과 휴대폰 요금, 책값, 용돈, 식생활비가 추가된다. 그렇다고 해서 섣불리 아르바이트 전선에 뛰어들다가는 학자금 벌충은커녕 학업을 그르칠 우려가 있다. 설령 아르바이트를 하더라도 한 달 수입을 탈탈 털어 봐야 한 달 치 방세로 다 들어간다.


 주거환경도 열악하기 짝이 없다. 서너 평 기껏해야 네다섯 평짜리 2인실에 침대와 책상과 미니 옷장과 싱크대와 화장실을 앉히다 보니 여유 공간이란 성인 한 명 눕기에 낙낙할 정도다. 곰팡이 핀 지하방이나 고시원, 심지어 별도의 화장실 없이 싱크대 옆에 변기만 달랑 박아 놓은 원룸의 사정은 말이 필요 없다. 또 다른 문제는 돌멩이도 소화시킬 나이에 생활비를 한 푼이라도 줄이겠다고 설렁설렁 끼니를 해결하다 건강을 해칠까 걱정이다.


 이게 끝이 아니다. 대학만 나오면 어지간한 일자리를 구하던 시대와도 달라졌고, 혼기가 차면 으레 결혼부터 하던 시대와도 달라졌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신해 일당백 하는 시대에 5공화국적과 비교하는 자체가 무의미하다. 자기 먹을 복은 갖고 태어난다는 말도 어째 신빙성이 떨어진다. 청년들이 단지 눈이 높아 결혼을 주저하고 직장을 따지는 게 아니다. 3포다 5포다 괜한 엄살이 아니다. 현대 물질문명의 팽창 속에서 왠지 인정은 파삭 메말라 가고, 사는 건 점점 팍팍해져 간다. 고통과 결핍에 대한 항체가 몸속에 생성되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먼 청춘들인지라 당장의 현실 혹은 미래가 더더욱 불안할 듯싶다.


 저출산 정책의 참담한 실패에서 보듯 대증 요법 식의 처방은 청년 문제를 해결하는 단초가 되지 못한다. 이들이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근본 원인에는 대학문을 나서기도 전에 빚부터 떠안아야 하는 구조적인 문제가 포함된다. 우선적으로 기숙사와 청년임대주택 공급량만이라도 확대하여 숨통을 틔워 주어야 한다. 청년들의 경제력이 향상되어야 혼인과 출산 관련 지표에도 변화가 생길 것이다.


 최근 몸소 겪은 일 덕분에 청년 세대의 고민을 깊이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었다. 평소에는 찬찬한 아들이 그 중요한 기숙사 신청을 새까맣게 잊고 지내다, 신학기가 코앞으로 다가온 시점에 그 사실을 떠올린 것이다. 서울 대학들의 기숙사 평균 수용률은 15퍼센트 안팎이지만 지금껏 무난히 당첨된 전력만 믿고 있던 터라 식겁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자 온 가족이 달려들어 부동산 관련 사이트를 뒤지고 중개업자와 통화도 했지만 별 소득이 없었다. 깝깝한 몇 날이 지나고 서울로 달려간 아들은 부동산 업소의 안내를 받아 학교 근처 방을 둘러보았다. 그런 뒤 집으로 전화한 아이의 입에서 아이고!’ 곡소리가 절로 터진다.


 우여곡절 끝에 보증금은 더 내고 월세는 덜 내는, 교통은 더 못하고 공기는 더 나은, 웬만한 방을 계약하고 금의환향(?)했다. 본격적인 자취생활 입문에 앞서 여느 때보다 짐 보따리를 꼼꼼히 꾸려 택배로 부치고는 쉴 겨를도 없이 이내 다시 상경했다. 방을 구하고 계약을 마치니 할 일이 태산이다. 전입신고, 짐 정리정돈, 인터넷 설치, 가스보일러와 온수기 점검, 장보기, 취사, 세탁, 청소, 보리차 끓이기 등. 독립된 생활을 시작하자마자 도대체 학생인지 살림하는 주부인지 헷갈린다. 그 와중에도 자취방을 찾아온 친구들에게 돼지고기볶음과 스파게티를 직접 만들어 대접했다니 청춘이 좋긴 좋다. 자취생활, 분명 낭만적이지만은 않을 터이나 두고두고 젊은 날의 소중한 추억이 될 것을 축원한다.


 지금껏 어려움을 모르고 성장하여 하루아침에 많은 일을 혼자 해결하려니 적이 당황스럽겠지만 교과서 밖, 길 위에서 귀한 깨달음을 얻은 듯하다. 삶이 얼마나 치열한 것인지, 청년들이 왜 그토록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하는지, 그럼에도 왜 빈곤에 허덕일 수밖에 없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청춘들이 아프다. 그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 마음은 더 아프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우리 밭을 뚝 떼어다 서울로 옮기고 싶다. 그리고 초고층 원룸 두 동을 나란히 지어 청춘남녀에게 선물하고 싶다. 하지만 이루지 못할 한낱 허황한 꿈이기에 내 마음도 마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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