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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을 위한 글

도스 일병의 종교적 신념

by 책벌레아마따 2019. 1. 20.

도스 일병의 종교적 신념 

                                                                                                         

  2004년 대체복무제 도입에 관한 병역법 개정안이 발의된 지 14년 만에 정부가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위한 대체복무제를 입법예고했다. 이에 앞서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와 대법원은,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병역법에 규정된 집총과 군사 훈련의 이행을 강제하는 것은 양심의 자유에 대한 침해라고 판시했다. 그리고 병역의무를 대신하여 비군사적 성격의 공익적 업무를 선택할 수 있도록 대체복무제 마련을 촉구했다

 

  그간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용어 자체가 크게 이슈로 떠오를 만큼 이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누구는 비양심적이라서 군대에 가냐는 공분을 초래할 정도다. 헌재는 어떤 사안에 대해 시시비비를 가릴 때 그렇게 행동하지 않으면 자신의 인격적인 존재가치가 허물어지는 강력하고 진지한 마음의 소리가 양심이라 정의한 터다.

 

  개인의 어떤 신념도 헌법 수호와 국가 존립의 당위성에 우선할 수는 없다. 다만 국가의 법질서와 사회의 도덕에 부합하는 다수의 주관적 사고나 가치관뿐 아니라 내적인 확신 또는 신념에서 비롯된 소수의 양심도 법적으로 보호받아야 한다는 헌재의 판결 취지에는 충분히 공감한다. 따라서 법치국가인 대한민국 헌재의 판결을 십분 존중하여 대체복무제를 수용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여겨진다. 이제 남은 과제는 깊고 확고하며 진실된소수자의 양심을 누가 어떤 방식으로 투명하게 검증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제도가 악용되지 않도록 관리 감독에 소홀함이 없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런데 대체복무의 세부안이 발표되기 무섭게 인권단체의 반발이 거세다. ‘36개월 복무, 교정시설 합숙근무를 징벌적 조치라고 하니 국민들은 당혹스럽다. 사법부가 내린 판결을 흔쾌히 수용하고 의무 불이행에 따른 대가를 치르는 것이 당연한 도리라 생각하는 일반인들과는 시각차가 크기 때문이다.

 

  보편적 신념을 가진 대한민국의 남성들은 단지 이 땅에서 남자로 태어난 죄로 징벌적 의무에 순응하여 두말없이 군문을 향한다. 그리고 특수 안보상황에 처한 조국의 존폐가 달린 중차대한 과업을 묵묵히 수행한다. 개인의 선택이 고려될 수 없는 곳, 24시간 내내 심신이 긴장 상태에 있는 곳, 당사자 못지않게 부모들의 피를 말리는 곳, 막말로 징집 명령이 떨어지면 그냥 끌려가는 곳이 군대다. 외부 세계로부터 철저히 고립된 열정 페이의 대표적 공간에서 고군분투하는 젊음들이 있기에 국가 존립이 가능하다고 말하면 과장된 표현인가. 병역 이행에 따른 보상 체계도 전무한 현 상황에서 헌신적 병역이행자의 사기를 저하하거나 자긍심과 자부심을 폄하하는 언행은 삼가는 것이 예의라 본다.

 

  참고로 일개인의 종교적 신념과 희생이 빛을 발한 전쟁 실화, 멜 깁슨 감독의 영화 헥소 고지를 소개한다. 7안식일교 재림파 신도인 데스몬드 도스 일병은 양심적 병역거부자. 그러나 군인으로서의 사명감이 투철하기에 도스를 백안시하던 동료 병사들도 차츰 그를 달리 평가하기 시작한다. 우여곡절 끝에 19455월 도스는 의무병으로서 격전지인 오키나와의 마에다 고지에 투입된다. 그리고 포화가 작렬하는 전장을 누비며 75인의 생명을 구한다. 일본군의 반격으로 후퇴한 뒤 재탈환에 나설 때는 도스의 기도가 끝나기를 기다려 진격을 개시할 정도로 동료들의 신임은 두텁다. 한때는 남다른 종교적 신념으로 인해 부대원들로부터 배척당한 그였지만 결국 헥소 고지의 불퇴전의 용사가 되었다. 끝내 총을 들지 않고도 누구보다 훌륭한 전적을 쌓은 도스에게 국가는 미군 최고의 명예훈장인 메달 오브 아너(Medal of Honor)’를 하사했다. 신념의 사나이 도스는 200687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병역정책의 다양한 해석과 시도는 고무적이다.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병역을 완수한 장병들이 국가를 위한 젊은 날의 희생과 봉사에 대해 일생 자긍심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2019년 1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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