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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관한 글

마음으로 듣는 음악

by 책벌레아마따 2024. 3. 1.

마음으로 듣는 음악

 

 

무언가에 심취하여 한순간이나마 세상 시름을 잊을 수 있다면 우리네 고단한 인생살이에서 나름의 위안이 되지 않겠는가. 음악은 그런 수단으로 꽤 유용하다고 여겨지며, 내 삶의 뒤안길에 늘 나와 궤적을 함께한 음악이 있었음을 고백한다.

 

유년 시절, 구식 냉장고와 덩치가 엇비슷한 전축세트가 집 안방을 차지했다. 덕분에 음악이 고플 때면 언제든 턴테이블에 LP레코드판을 걸어 놓고 흐르는 선율에 몸과 마음을 맡기곤 했다. 음악 사랑의 첫 시작인 셈이다. 그때로부터 음악이 존재하는 한 세상은 머물 만한 곳이며, 하루 한 곡의 음악을 즐길 여유만 있어도 그 삶은 결코 비루하지 않다고 신앙처럼 믿어 왔다. 음악에 권태를 느낀 기억은 당연히 없다. 그렇다고 세상 모든 노래를 무작정 좋아하는 것은 아니어서 날씨나 계절이나 분위기에 따라 선곡을 달리한다.

 

평생을 먹어도 물리지 않는 밥처럼 듣고 또 들어도 새록새록 사무치는 음악이다. 그런데 창 밖에 비 오고 왠지 멜랑콜리한 날에는 유달리 음악에 허기진다. 이때 경쾌한 곡으로 처진 기분을 상승시켜도 좋겠지만 분위기를 그대로 살려 ‘남 몰래 흐르는 눈물’, ‘빗줄기의 리듬’, ‘슬픈 로라’에 스르르 빠져 본다. 이런 날에 스스로에게 즐겨 추천하는 뮤지션이 있다. 다름 아닌 소녀 감성의 청아한 음색을 소유한 나나무스꾸리나 울림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조안 바에즈의 음악이 마침맞은 듯해서다. ‘스캣 창법(scat 가사 대신에 뜻이 없는 음절을 흥얼거리는 것)’으로 노래하는 이브 브레너의 ‘강가의 아침’과 에이스 캐넌의 색소폰 연주곡 ‘로라’와 프란치스코 타레가의 기타 연주곡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도 제격이다. 여기에 훌리오 이글레시아스의 ‘라 팔노마’, 토니 달라라의 ‘라 노비아’, 장 프랑수아 모리스의 ‘28도 그늘아래’, 아그네스 발차의 ‘기차는 8시에 떠나네’, 나다의 ‘마음은 집시’까지 내처 듣게 되면 귀가 아주 그냥 호강하는 날이다.

 

‘짜장면이 최고, 짬뽕이 최고’ 식의 다소 유치한 공방은 음악 세계의 라이벌 간에도 통용된다. 예를 들어 ‘별이 빛나는 밤에’, ‘여름날의 소야곡’, ‘이사도라’ 등 감미로운 연주의 끝판왕 폴 모리아 악단과 ‘Wipe out’, ‘Tequila’, ‘Work don't run’, ‘Telstar’, ‘Ghost riders in the sky’ 등 폭발적인 연주의 벤처스 악단은 용호상박이다. ‘짬짜면’이라는 제3의 선택지도 있듯 개인 취향에 따른 단순 논리만 고집하기보다 좋은 음악은 두루 수용하면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글렌 밀러 관현악단의 ‘In the mood’를 추가한다.

 

‘The young ones’, ‘Early in the morning’ ‘Evergreen tree’ ‘Summer holiday’를 비롯해 주옥같은 명곡들을 남긴 크리프 리처드의 음색은 허스키하면서 달콤하다. ‘Falling in love’를 부르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음색 역시 솜사탕처럼 감미롭다. 게다가 ‘Anything that's part of you(’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으로 번안)’, ‘Help me make it through the night’, ‘For the good times’, ‘I cant stop loving you’에서는 왠지 모를 처연함마저 묻어난다. 반면에 특유의 다리 떨기 춤을 추며 ‘Hound dog’, ‘Don't be cruel’, ‘Burning love’를 열창하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격정적일 수 없다.

 

마이클 잭슨은 무대 위에서 빛나던 뮤지션이다. 강렬한 비트에 맞춰 소울 충만한 노래와 현란한 댄스와 화려한 퍼포먼스를 펼쳐 관객을 열광시켰다. 한 시대를 풍미하며 전 세계 팬들의 무한 사랑을 받았건만 정작 그는 약물에 의존하지 않으면 안될 만큼 외로웠다. 대중음악의 황제는 이미 대중 곁을 떠났고, 그의 라이브 공연을 두 번 다시 볼 수 없는 팬들은 가을날 포도 위를 뒹구는 낙엽을 바라보는 심정만큼이나 쓸쓸하다.

 

영화에 삽입된 OST는 때로 영화보다 긴 여운을 남긴다. ‘황야의 무법자’의 ‘A fistful of dollars’ 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타라의 테마’ 외에 ‘부베의 연인’, ‘나자리노’, ‘스팅’, ‘러브 스토리’, ‘닥터 지바고’, ‘대부’, ‘해피 투게더’, ‘형사’, ‘미션’, ‘빠삐용’, ‘시네마 천국’, ‘디어 헌터’ 같은 영화의 OST를 접할 때는 음악의 힘이란 게 느껴진다.

 

엔카는 과장된 감정 표현이 왠지 부담스러운데 미소라 히바리의 노랫말에는 더러 가슴에 꽂히는 대목이 있다. 한때는 이츠와 마유미와 대만 출신 등려군의 노래도 즐겨 들었다. 살바토르 아다모의 ‘그리운 시냇가’나 밀바의 ‘Aria di festa(축제의 노래)’, ‘서글픈 사랑’, ‘리베라이’ 등 늘 듣던 칸초네와 샹송이건만 별달리 사람 마음을 헤집어 놓는 날도 있다. 한편, 로큰롤· 해비 메탈· 펑크 록을 소음으로 치부하는 이들이 없지 않은데, 답답한 속을 뚫어 주고 스트레스를 날려 주는 효과는 분명 있다고 본다.

 

‘그레고리오 성가’에 대해서도 한 마디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일설에 따르면 6세기 말 그레고리우스 교황에 의해 집대성되었다고 전해지며, 하나의 선율로 이어지는 단선율의 단순미와 순수함이 특징적이다. 다소 신비스러운 분위기의 성가곡에 매료된 팬들이 하나둘 늘면서 1990년대 초에는 교인은 물론 일반에게까지 널리 전파되었던 것으로 안다. 이제부터라도 교회 음악으로서의 명성은 지키되 현대인을 위한 힐링 음악으로도 각광받을 수 있도록 대중화 작업이 이루어지면 좋겠다. 한참 듣다 보면 살짝 지루해지면서 까무룩 잠의 유혹에 빠지는 것이 단점인 동시에 장점이 아닐까 싶다.

 

같은 음악을 들어도 어떤 날은 무덤덤하고 어떤 날은 가슴 저미는 통증이 느껴지니 희한한 노릇이다. 장르 불문하고 음악은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이면서 상처 난 마음과 영혼을 치유하는 치료사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긴장된 사람의 마음을 눙치게 하는 마력이 있다. 고로, 듣고 싶은 음악은 많고 인생은 짧은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201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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