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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관한 글

와사보생의 가르침

by 책벌레아마따 2024. 10. 14.

와사보생의 가르침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 하니 지구 한 바퀴도 한 걸음부터인 게 당연지사다. 매일 4km씩 걷는다고 가정할 때 일 년이면 1,460km, 10년이면 14,600km, 20년이면 29,200km, 28년이면 40,880km를 걷게 된다. 다시 말해 지구 적도 둘레가 약 40,075km이므로 걸어서 지구 한 바퀴를 도는 폭이다.

 

조선 시대 명의라 일컬어지는 허준은 동의보감에서 약보보다 식보가 낫고 식보보다 행보가 낫다고 했다. 이는 섭생과 걷기의 중요성을 강조한 금과옥조이자 예방의학적 차원에서 반드시 실천해야 할 건강수칙이다. 세상을 전부 얻는다 한들 건강을 잃으면 무용지물이다. 우리 모두 귀한 가르침을 부지런히 실천하여 건강한 삶을 영위했으면 한다. 문제는 제 아무리 훌륭한 트레킹길이나 산책길이 있다 해도 접근성이 떨어지면 그림의 떡이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쉽게 오갈 수 있는 길이라야 실질적인 활용성을 높일 수 있다.

 

세계인들에게 걷기 성지로 이름난 장소는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이다. 유네스코로부터 역사적, 종교적,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은 세계문화유산이다. 연중무휴 세계 각지로부터 고생길을 자처하는 이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한편, 국내에도 매력 넘치는 걷기 명소가 즐비하다.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제주 올레길, 지리산 둘레길, 북한산 둘레길, 경북 문경새재길, 경기 둘레길 등 한국적 특색을 지닌 토종 길에 아낌없는 관심을 가져 봄직하다.

 

한국의 수많은 도보길 가운데 단연 으뜸은 규모 면에서 압도적인 코리아 둘레길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설계하고 10개의 광역지자체와 78개의 기초 지자체가 참여하여 동쪽의 해파랑길’, 남쪽의 남파랑길’, 서쪽의 서해랑길’, 북쪽의 ‘DMZ 평화의 길을 하나로 잇대어 장장 4,530의 초장거리 걷기 길을 조성했다. 만약 이 길 전체를 상공에서 한눈에 바라본다면 길디긴 한 가닥의 실이 대한민국 국토 외곽을 에두른 듯 장엄한 간결미에 매료될 것이다.

 

해파랑길은 시작점인 강원 고성 통일전망대를 출발해 7번 국도(일명 등뼈 국도’)를 따라 도착점인 부산 오륙도 해맞이공원에 이르는 50개 코스, 750km의 해안길이다. 무진장한 햇살과 짙푸른 바다와 싸르락싸르락 해조음이 한데 어우러진 천상의 풍경을 자랑한다. ‘남파랑길은 부산 오륙도 해맞이공원에서 전남 해남 땅끝탑으로 이어지는 90개 코스, 1,470km의 해안길이다. 포말이 부서지는 해안선을 따라 다도해를 고이 품은 대자연의 비현실적 아름다움이 눈앞에 펼쳐지면, 도보 여행객의 가슴도 덩달아 일렁이게 되어 있다.

 

서해랑길은 전남 해남 땅끝탑을 시작점으로 인천 강화 평화전망대까지 굽이굽이 이어지는 109개 코스, 1800의 해안길이다. ‘해파랑길이나 남파랑길과는 또 다른 매력의 낭만과 감성을 선사함으로써 서해랑길도보 여행의 강력한 동기 부여가 될 것은 분명하다. 인천 강화 평화전망대에서 강원도 철원 고성까지 35개 코스, 510km'DMZ 평화의 길에는 대자연의 순수함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한반도 허리, 마지막 청정 지대라 불리는 천진무구한 그 땅 위에 산과 강과 들판 그리고 거기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걷기의 요체는 두 다리의 힘을 믿고 떠나는 세상 탐방이며, 최대 혜택은 와사보생(臥死步生,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는 뜻)’의 기적 체험이다. 길은 사람과 물자, 지식과 기술, 역사와 문화가 넘나드는 통로 역할을 한다.

 

달 탐사 우주선인 아폴로 11의 닐 암스트롱 선장은 인류 최초로 달 표면에 첫 발을 내딛은 뒤 이런 말을 남겼다. ‘한 인간에게는 작은 한 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거대한 도약이다우리도 한번 이렇게 외쳐 보면 어떨까. ‘첫 시작은 작은 한 걸음이지만, 살아생전 기필코 무동력으로 지구 한 바퀴 거리는 돌아보리라!’

2024. 1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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