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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관한 글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곳

by 책벌레아마따 2024. 11. 7.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곳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은 저마다 다르다. 삶의 일부 또는 삶의 종결이라 보는 게 일반적이지만 종교적 관점에서는 새 삶으로 이어지는 통로이기도 하다. 죽음의 종류에도 자연사를 비롯해 여러 형태가 있다. 그 가운데 당사자나 유가족으로서 가장 애통하고 황망한 죽음은 무방비 상태에서 불시에 맞닥뜨리는 사고사가 아닐까 한다.

 

2014416850분경, 수학여행길에 오른 단원고교 학생과 교사·일반인이 탑승한 제주행 연안 여객선이 전남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했다. 학생 250명과 교사 12, 일반인 33, 서비스직 승무원 9명 등 사망·실종을 합쳐 304명의 목숨을 앗아간 비극적 대참사의 서막이었다. 당시 선장은 배와 승객을 내팽개치고 도주함으로써 참사의 실체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었고, 국가안전관리망은 총체적 부실을 드러내었다. 올해로 세월호 참사 10주기가 되었건만 모두의 기억 속에서 도려내고 싶은 그날의 깊은 상처는 채 아물지 않았다.

 

202210292215분경, 할로인 축제 참가자들로 북적대던 서울 도심의 번화가가 한순간 아비규환의 현장으로 돌변했다. 이태원은 내·외국인이 연중 즐겨 찾는 관광 특구이다. 그런데 코로나19 팬데믹의 여파로 경기 침체를 겪던 중 방역조치가 완화되자 모처럼 활기를 찾고 할로인 행사도 재개한 터였다. 축제장에 인파가 몰릴 것은 당연한 예상이었다. 그러나 행사 참가자들을 안전하게 유도하고 보호해야 할 행정력은 미진했다. 결국 외국인 26명을 포함한 사망자 159명과 부상자 197명을 낳은 대형 참사로 기록되고 말았다.

 

두 참사 모두 희생자의 대다수가 청소년과 청년층이란 점에서 사회적 충격과 파장은 매우 컸다. 희생자 한 명 한 명의 사연이 전해질 때마다 시민들은 함께 눈물을 흘리며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그 어떤 애도로도 유가족의 비통한 심정을 위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삶에서 정녕 견디기 힘든 고통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다. 더구나 참척, 다시 말해 자식을 앞세운 부모의 애통이야말로 세월이 흐르고 흘러도 결코 희석되지 않을 극한의 아픔이다.

 

이태원 참사가 발생하기 수일 전인 102618시경, 이번에는 뜻하지 않은 사고가 뜻밖의 공간에서 터졌다. 경북 봉화군에 자리한 아연 채굴 광산에서 일어난 매몰 사고가 그것이다. 수직 갱도를 통해 쏟아져 내린 약 900톤의 토사에 의해 땅속 190m 갱내에서 작업 중이던 광산근로자 두 명이 한순간에 고립되었다. 소방 당국은 인력과 장비를 동원하여 난항을 거듭한 끝에 진입로를 확보했지만 매몰자의 생사 여부조차 확인할 수 없었다.

 

그 시각 두 사람은 지하 갱도에 갇힌 채 세상과 완전히 분리되었다. 그러나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도 반드시 구출되리라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처했다. 동굴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을 받아 휴대하고 있던 커피믹스를 녹여서 함께 나눠 마시고, 주변에 있는 비닐을 모아 천막을 치고 마른 나무로 모닥불을 피워 체온을 유지했다. 마침내 사고가 발생한 지 열흘째 날도 거의 저물어 가던 11423시경, 두 사람은 극적으로 구조되어 다시 세상 밖으로 나왔다. 그들의 무사 생환을 설명해 줄 유일한 단어는 바로 기적이다.

 

참고로 인간은 극한 환경에 놓이게 되면 생명 현상을 유지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비상한 생존력을 발휘한다. 체내에 축적된 지방을 태워 에너지로 사용하고, 신진대사 속도를 최대한 늦춰 에너지 소모를 최소화한다. ‘333 생존법칙에 따르면 공기 없이 3, 물 없이 3, 음식 없이 3주간 생존이 가능하다.

 

숱한 사건·사고의 현장에는 늘 삶과 죽음이 교차한다. 행인지 불행인지 사건·사고의 기억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차차 옅어진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제3자의 입장이고 생존자나 유가족에게는 평생 지워지지 않는 상처로 남을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자신의 가슴 아픈 이야기가 뭇사람들의 뇌리 속에 오래오래 기억되기를 바란다. 고통을 홀로 감내하기가 그만큼 두렵고 힘겨워서가 아니겠는가. 이들이 슬픔의 깊은 수렁에서 조금씩 천천히 빠져나오도록 돕는 길은 우리 사회의 지속적인 관심과 연대 의식이다.

 

안전 의식에 관한 한 부족함보다는 지나침이 나을 듯하다. 평소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 곳곳에 존재하는 안전 사각지대를 미리미리 해소함으로써 불의의 사고를 일찌감치 차단할 필요가 있다. 이야말로 소리 없이 다가오는 불행을 대비하는 최선책이라 믿는다.

2024. 1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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