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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을 위한 글

빈첸시오 이야기

by 책벌레아마따 2014. 1. 8.

 

 

                                               빈첸시오 이야기

 

                                                                                                                  2011년 12월

 

 무시로 엄마 방을 들락거리며 거울 앞에서 꽃단장을 하던 녀석이 기숙사 딸린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옷가지며 생필품이며 이불 등속을 챙겨 집을 떠난 후 어찌어찌 시간은 흘러 3학년이 코앞이다.

 

 우주비행선에라도 태워 지구를 떠나보내는 것도 아닌데 외국으로 유학 보내는 것도 군대 보내는 것도 아닌데, 처음엔 하늘이 주저앉는 것처럼 먹먹했다. 지금 아들은 고만고만한 놈들과 한데 엉켜 질풍노도의 시기를 서로의 체온으로 견디며, 학문적 지식을 연마하는 외에 더불어 사는 법을 몸으로 익히고 있는 중이다. 아이한테 집이 하숙이 되고 학교가 제 집이 되어 가는 동안 어미는 집 떠난 자식을 문가에서 기다리며 눈가가 죄 짓물러 버렸다.

 

 온전히 제 두 다리의 힘으로 대지를 버티고 서서 첫 걸음마를 떼던 그 감동의 순간은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어미 가슴에 생생하다. 단순한 동작을 수없이 반복하는 집념은 경이로웠고, 세상 모든 비밀을 밝히려는 듯 집요한 질문에는 진이 다 빠졌다. 외동으로 자라 친구가 고픈 녀석은 집 앞 놀이터에 늘 첫 번째로 출근 도장을 찍고 가장 늦게 퇴근하였다. 동네 야산을 매일 오르내리며 걷는 내내 동화나 유머를 들려주고 퀴즈 놀이나 끝말잇기를 하다 보니, 언어 능력은 물론 상상력이나 창의력도 한 뼘씩 커가는 것이 보였다.

 

 네 살 나던 해, ‘낙원에서 쫓겨난 아담과 이브라는 성서동화를 좋아하여 별 생각 없이 읽어 주곤 하였는데, 어느 날 이웃 자매님이 방문한 때였다. 이야기 삼매에 빠진 우리 저만치에서 책장을 짚어 가며 목청을 돋우는 녀석에 화들짝 놀랐고, 철자법에 관계없이 토씨 하나까지 통째로 외워 말한 것임을 알고는 박장대소하였다. 교우들 사이에서며 동네에서 이 소문이 짜하자 스스로 고무되었는지 부쩍 책을 가까이 하기 시작하여 이내 한글을 떼었다. 외출할 때도 전철을 타면 으레 신발을 나란히 벗어 놓고 올라앉아 내릴 때까지 줄곧 책을 읽었다. 그해 광복절 아침에는 아들을 잃어버리고 식겁하였다. 동네 주민들이 모두 나서 태극기 휘날리는 온 마을을 뒤진 끝에 눈물의 상봉은 이루어졌지만 잠시나마 지옥과 천국을 오갔다.

 

 유치원에 입학한 직후 경원선 기차에 올랐다가 마침 단체 나들이 중인 어느 유치원 원아들과 같은 칸을 차지하게 되었다. 소란스러운 분위기가 이어지자 녀석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차 안에서는 조용히 해야 돼.”라고 스타카토 식의 기차 화통을 삶은 듯한 소리로 외치는 순간 기차 안이 찬물 끼얹은 것처럼 정적에 쌓였다. 종로3가 지하철 플랫홈에서는 담배 피우는 아저씨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꽁초를 어떻게 하는지 감시하더니, 그 뒤 동네 쓰레기를 그러모아 분류 수거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환경보호를 주제로 그림을 그리며 지구를 살려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한번은 주방 식탁의자에 말없이 앉아서 저녁준비로 분주한 엄마를 지켜보다가 냉장고 문을 6번 열었는데 2번은 불필요하게 열었다고 지적하였다.

 

 

 골목에서 하수도관 공사 중인 아저씨를 보며 엄마, 아저씨들 커피 한 잔 타다 드리죠.”하던 일이며, 친구의 잃어버린 퀵 보드를 찾아 온 풀숲을 뒤지고 다녀 팔과 다리가 긁혀 들어온 일이며, 시험은 내일인데 제 공부는 밀쳐놓고 복습문제집을 하염없이 친구에게 전화로 설명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아이의 고운 마음결에 흐뭇하였다. 초등학교 2학년 어느 한밤중에 갑자기 얼굴이 창백해지고 몇 차례나 토하기에 자초지종을 캐묻자, ‘방과 후 청소하는데 친구가 떠밀어 교실 바닥(대리석)에 머리를 쾅 부딪쳤다고 털어 놓았다. 담임 귀에 들어가면 원체 말썽 많은 그 친구가 크게 혼날 것 같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니 어이가 없었다. 다음날 종합 병원에서 머리 사진을 찍어 본 결과 특이사항은 없이 향후 몇 개월 주의해서 관찰하라고 했는데 아직까지 별탈은 없어 불행 중 다행이다.

 

 

 컴퓨터를 최신형으로 바꾼 뒤 생전 처음 보는 현란하고도 팽팽 돌아가는 화면에 혹했는지 한 4개월을 인터넷 게임에 빠졌었다. 말로는 설득이 안 되어 컴퓨터에 암호를 거는 등 강압적인 방법을 동원하자, 전에 없던 태도로 반항하는 것이 영락없는 중독현상이었다. 안 되겠다 싶어 아이와 단 둘이 방에 들어가 장장 다섯 시간에 걸친 마라톤 대화를 나누었고, “시간을 좀 더 의미 있는 일에 사용하겠어요.”라는 답을 얻어냈다. 금단현상을 우려해 점차적으로 시간을 줄여나가는 방안을 제시했지만 당찬 성격대로 그날로 단칼에 끊어버렸다. 그간 아이와 쌓아온 신뢰와 사랑을 바탕으로 대화의 소통이 이루어진 것에 깊이 안도하였다.

 

 수업 시간에 사용하는 학습 자료나 교구들을 6년간 집에서 만들어 보내다 보니, ‘오늘은 인성이가 또 뭘 가지고 왔나반 친구들이 늘 호기심 반 기대 반에 차 있다고 들었다. 내친 김에 참고서도 아예 엄마 표를 만들자 시중에서 판매하는 것은 안 좋아하고 엄마가 만든 국어 참고서 수학 문제집에만 흥미를 가져서, 한 명의 고객을 위한 맞춤형 보충교재 제작에 꽤나 품이 들어가곤 하였다.

 

 공부가 몸과 마음에 짐이 되지 않게 학교 수업 그 이상의 공부나 성적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대신 밖에 나가 실컷 뛰어놀게 했지만 또래 친구들의 빼곡한 스케줄 때문에 혼자서 공차기나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고심 끝에 체육관에 보내 태껸을 시작으로 태권도와 검도와 유도를 차례로 수련하며 꼬박 6년간을 매트 위에서나마 땀에 젖게 하였다. 독서 회원으로도 가입하여 책과 함께 숨 쉬며 교과서 밖 세상에서 맘껏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도록 도왔다. 나름의 교육철학과 원칙에 따른 엄마 방식이 영 헛되지는 않았는지 학원은 물론 그 흔한 학습지조차 일절 접해 본 적 없지만, 균형 잡힌 사고력과 통찰력의 소유자로 성장해 나갔다. 초등학교 입학식 날, “공교육을 살리기 위해서 나부터 모범이 될래요.”라는 다부진 말로 엄마를 미소 짓게 하더니, 학력 최우수상도 놓치지 않고 어린이날에는 3년 연속으로 모범 어린이상을 받아 자신이 한 약속을 잘 지켜 내었다.

 

 초등학교 6년간 사용한 낡은 책가방을 중학교 때도 사용하겠다고 우기는 것을 겨우 설득했는데, 고등학교 입학 앞두고 또다시 상급학교에 진학하면 모든 걸 새로 바꿔야 한다는 것도 하나의 편견이라고 반박하여 결국 낡은 책가방을 메고 입학하였다. 또래 아이들이 환호하는 메이커 운동화나 MP3 휴대폰 한두 가지쯤 선물할 줄 아는 기분파 엄마가 되어 보려 해도 통 기회가 오지 않는다. 워낙 물건을 아껴 쓰기에 수십 번 읽은 책도 새것 같고 너덜거리는 운동화도 공차기할 때 몇 번 더 신고 버린다고 하니 검약 정신은 타고난 것 같다.

 

 자신의 잘못에 대한 벌을 두려워 않고 실수를 감싸주면 외려 화를 내니까 얘가 바보 아니야?’싶을 때도 있다. 학교성적 평균을 반올림해서 남에게 말했다고, 누가 자기를 칭찬하는데 엄마가 맞장구를 쳤다고 심통을 있는 대로 부린다. 시험에서 객관식 문제의 답이 헛갈려 끝까지 고심하다가, 정확히 모르면서 답을 찍는(?)게 싫다며 결국 빈칸으로 남겨 둔 그 우직함을 누가 말릴까.

 

 너무 정직한 나머지 고지식하고 무슨 욕심이 없으니 승부욕이나 근성도 부족하며 요령도 융통성도 전무하지만, 반면에 늘 겸손하고 절제의 미덕을 알며 사람과 자연을 귀하게 여기는 아이의 향기로운 인격에는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부모의 인생 2프로그램에 따라 졸창간에 도시에서 이곳으로 묻어와, 동네 시골 중학에 떠밀려 들어간 녀석은 학교 대표로 군()장학금은 수령하면서도 학교생활에는 왠지 심드렁한 듯 보였다. 돌이켜 생각하니 그때 아이는 아픈 어금니처럼 사춘기를 앓고 있었다.

 

 우주의 역사와 천체의 운행과 동서양의 종교와 사상과 역사와 문화와 예술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이던 그 시간들. 아이가 연주하는 피아노와 아이리시 휘슬 선율에 하루 피로를 잊었던 그 시간들. 함께 기도하고 함께 먹고 함께 이야기 나누고 함께 노래하고 함께 책 읽던 그 시간들이, 이제는 점점 희미해져 갈 우리의 기억 속에서 그리움으로만 존재하게 될까봐 피에타의 성모님처럼 가슴이 시리고 아프다.

 

 해리포터와 셜록 홈즈와 성웅 이순신 장군과 영국 해군지휘관 넬슨에 풍덩 빠졌던, 천부적 언어 감각과 음감과 미각을 가진, 다소 예민하며 조금 까칠한 성격을 가진 이 아이의, 어느 가을날 하굣길 가을 친구 데리고 왔어요.”하며 들꽃 한 줌 엄마 손에 건네주던 로맨티시즘을 사랑한다.

 

 아이는 아들바보인 이 엄마에게, 아들이자 연인이며 인생의 후배이자 신앙 안에서의 한 형제이며 도반이며 소울메이트이며 같은 하늘을 머리에 이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동반자이며 아니 무엇보다 존재 이유이다.

 

 

 녀석은 여전히 급한 것 없이 느긋하고, 시험기간마저 내신 성적에는 별 도움이 안 되는 책만 골라 읽는 것도 신기하다. “시험이 낼모렌데 공부 좀 하면 안 될까?” 조심스레 던진 한 마디에, “노는 게 아니고 쉬는 거예요.”라는 촌철살인의 답변.

 

 그래. 어차피 인생은 마라톤인데 쉬엄쉬엄 가거라. 때로는 곧고 때로는 굽은 네 앞에 펼쳐질 수많은 길들을 뚜벅뚜벅 가거라. 네가 가는 그 길이 누군가에게는 이정표가 될 수 있게 발자국 어지럽게 남기지 말거라.

 

 공교육이 사교육에 휘둘리는 이상과열 현상의 교육열기가 팽배한 이 땅에서 학교와 가정에서의 가르침만으로도 전인적 교육의 롤 모델이 될 수 있다는 뚝심 하나로 예까지 왔노라, 아들과 엄마는 자부한다.

 

 녀석은 기숙사로 돌아갈 때 항상 다녀올게요.”라고 인사한다. 언제라도 아이가 돌아오면 엄마 품을 내줄 수 있으면 좋겠다.사랑하는 아들에게 오래오래 고향이 되어 주고 싶다. 엄마가 바로 아들의 고향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