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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을 위한 글

병역, 그 아름다운 의무

by 책벌레아마따 2013. 12. 20.

                                                병역, 그 아름다운 의무

                                                                                          

                                                                                            2013년 12월 19일

 

 

 엄동설한 팬티 차림에 연병장에 불려나가 엉덩이 테러를 경험한 남성은 꿈속에서라도 군대에 다시 가게 될까 두렵다. 머리로 지구를 떠받치던 원산폭격의 트라우마는 세월이 흘러도 사그라지지 않는다. 호환마마만큼 혹독한 군문을 거친 그들이기에 군대 레퍼토리는 평생을 우려도 늘 풋풋하고 흥미진진한 네버엔딩 스토리이다.

 

 군대 식사는 떠먹는 건 고사하고 흡입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했다. 명색은 소고기국이라는데 소가 발만 담근 멀건 국물로는 꺼진 뱃고래가 차지 않았고, 잠자리 역시 딱 그 수준이었다. 줄빠따에 이골이 날 즈음 거르는 날이 외려 더 불안하고 잠도 오질 않았다. 손과 발에 생긴 동상과 무좀은 군필자의 자랑스러운 훈장이다.

 

 어찌 되었건 훈련은 고되고 기합은 더 고되던 지난날의 고생담을 조금 각색한 듯한 남자들의 그 화려한 무용담이 나는 좋다. 남편이 복무하던 전방의 산골 마을 어느 과수원집 딸의 애교스러운 추파도 나는 좋다. 막내를 군대 보낸 어느 늙은 어머니의, 고목처럼 메마른 손에 지난날의 회한처럼 얼룩진 생채기의 무게가 나는 좋다. 비록 고위관직의 아버지들과 신의 아들들에게만 발현하는 금시초문의 신체질환과 징집 면제와의 상관관계를 명쾌하게 이해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작년 수능시험을 치룬 직후 아들 앞으로 징집 통지서가 날아들었다. 곁에 두어도 그리운 녀석을 사회와 격리시켜 365일 긴장과 위험이 상존하는 그곳으로 보내라는 명령에 가슴이 철렁했다. 대한민국 남아로서 국가의 부름에 거스를 수도 없고. 어쩌랴, 병무청에서 공인한 신체검사 1등급의 건강한 심신으로 당당히 병역 의무를 이행할 일만 남았다. 고교 마칠 때까지도 태평세월을 누리다 이제 겨우 공부에 불을 지폈는데, 학업과 단절되는 2년이란 시간이 아들 인생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사뭇 궁금하다.

 

 돈 주고도 사지 못할 특별한 경험이 될 거라며 되레 엄마를 위로하는 속이 찬 아들은, 며칠 전 소신대로 육군 전방부대에 지원했지만 전산추첨에서 떨어졌다. 청년 실업의 극심한 취업난의 여파로 일단 군대부터 가고 보려는 지원자들이 급증한 탓이다. 인기 병과는 말할 것도 없고 나머지 병과 경쟁률도 덩달아 달아오르는 씁쓸한 현실이다. 그러다보니 군대 가는 것도 억울하고 가지 못하는 것도 억울하다는 청년들의 탄성이 터져 나오고 있다.

 

 시대가 바뀌었으니 군대도 병영 문화도 달라져야 한다. 정신무장 시킨다는 미명 아래 얼차려나 뺑뺑이 같은 기합만 주어서는 결코 발전할 수 없다. 훈련은 엄격하되 개인의 인격도 사생활도 존중해 주어야 한다. 급료 몇 푼 올리는 것보다 중요한, 충분한 영양 공급과 편안한 잠자리 제공 같은 실질적인 처우 개선이야말로 장병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고 나아가 전투력 향상과도 직결되리라 믿는다.

 

 군필자 가산점제도를 대하는 일부 여성계 인사들의 시각도 다소 느슨해질 필요가 있다. 군복무 여성에게 동등한 혜택을 준다면 남녀평등 원칙에도 위배되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젊음의 한때를, 국가에 오롯이 헌납하는 그 숭고한 의무에 대한 올바른 평가와 인식이 확산될 때, ‘군발이같은 자조 섞인 단어는 자연스레 사어死語가 될 것이다.

 

 과거에 비해 군대 형편이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온 국민이 두 다리를 뻗고 잠자리에 든 그 시간에도 불침번을 서야 하는 그들이다. ‘안 되면 되게 하라는 군대 문화 속에서 성장한 남성들이 사회에 진출하여, 불가능을 가능케 한 대한민국 경제신화의 주역이 되었다. 뒤를 이은 후배들 역시 오늘까지 숱한 전설을 창조해 왔다.

 

 이제 그 길을 아들이 갈 것이다. 아들을 포함한 이 땅 위의 모든 아름다운 청춘들이여, 부디 멋진 남자 진짜 사나이가 되어 무사 생환하라. 나 그대들을 웃으며 보내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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