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관한 글
인생 백세시대에 관한 슬픈 보고서
by 책벌레아마따
2015. 7. 15.
인생 백세시대에 관한 슬픈 보고서
한국인에게 백세 시대는 더 이상 꿈이 아니다.
우리나라 총인구수는 2012년 5월 31일 기준 50,819,380명으로, 백세 이상 고령자 1만1천586명을 포함하여 60세 이상의 인구는 799만5천680명이다. 환갑도 드물던 때가 있었는데, 이제는 ‘9988234(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 이삼 일 앓고 죽음)’를 외치며 노익장을 과시하는 장수인들 덕분에 예순 나이는 꽃중년이 되었다.
최근 들어 인생 백세를 쉽게 입에 올리지만, 동서고금에 걸친 인간 수명에 관한 비밀을 알고 나면 백세가 갖는 의미에 새삼 놀라게 된다.
지금으로부터 4000년 전 청동기시대에는 사람의 평균수명이 18세였고, 2000년 전인 서기 1세기경에도 고작 22세에 불과했다. 중국 진나라에서부터 청나라 말기까지의 황제들은 39.2세, 고대 로마 황제들은 37세의 평균수명을 각각 기록했다. 우리나라는 영조가 83세로 최장수 임금의 기록을 세웠으나, 조선 임금의 평균수명은 43.3세였고 평민은 24세였다.
근현대에 들어서는 1926년∼30년 33.7세, 1970년 61.9세(남자 58.7세 여자 65.6세), 1990년 71.3세(남자 67.3세 여자 75.5세), 2010년 현재 80.7세(남자 77.20세 여자 84.07세)로, OECD 회원국 평균인 79.8세보다는 높다. OECD 회원국 중에서는 일본이 83.0세로 가장 높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2050년 한국인의 평균수명을 87.4세(남성 85.1세, 여성 89.3세)로 전망하고 있다.
한국은 1999년 65세 이상 노인 비율이 전체 인구의 7%를 넘어서면서 이미 고령화 사회에 진입했고, 2022년에는 14%를 돌파하여 고령사회에 들어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국은 세계에서 제일 빠른 속도로 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다.
평균 수명이 이렇게 늘어난 데는 몇 가지 원인이 있다. 생활수준이 향상됨에 따라 영양 상태가 나아졌고, 보건과 환경 정책이 개선되면서 전염병이 감소했다. 특히 항생제의 등장으로 유아 사망률이 저하되었고, 결핵에 의한 청년층의 사망률이 현저하게 낮아졌다.
인간의 최대수명은 어느 정도일까.
아무리 의학이 발달해도 인간의 죽음은 불가항력적이고 노화 현상 역시 비가역적이다. 지금도 여전히 80세가 되기 전에 절반이 사망하고 100세가 되기 전에 99%가 사망한다. 그동안 인간의 평균수명이 획기적으로 연장되었지만 인간 최대수명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성서 창세기 6장 3절, -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들은 살덩어리일 따름이니, 나의 영이 그들 안에 영원히 머물러서는 안 된다. 그들은 백이십 년밖에 살지 못한다.’ 에 근거하여 인간 수명을 120세 정도로 보는 시각이 보편적이다.
기네스북에 오른 프랑스의 최장수노인 잔느 칼망 할머니는 1875년 2월 21일 태어나 1997년 8월 4일 12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는데, 85세에 펜싱을 배우고 100세까지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한다. 그녀의 수명이 보편적 수명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 어쩌면 진시황제 이래 모든 인간의 공통된 꿈인지도 모른다.
장수는 불행인가 축복인가.
경제적인 여건을 갖추고 심신이 건강한 사람에게는 축복이겠지만, 아무런 노후 대책이 없는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이미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일본의 경우에는 그 방면에 많은 노하우가 축적되어 있고, 고령자들을 위한 복지 후생제도도 잘 갖추어져 있다. 심지어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사람들끼리 죽음을 잘 맞이하기 위한 강의도 듣고 공부도 하면서 함께 ‘무덤 친구’를 만들고 있다. 서로의 외로움과 아픔을 공감하는 사람들끼리 인생의 마지막 시간을 함께 보내다 나중에 공동 무덤 마을에 입주하는 것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경우는 도시의 모든 시설이 노인들의 눈높이에 맞추어져 노인들의 천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제적으로 풍족한 은퇴 노인들이 너싱홈 같은 유료 양로시설에서 편안한 여생을 즐기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사정은 어떠한가.
65세 이상 노인의 빈곤율이 OECD 국가 평균의 3.4배인 48.5%이다. 고령인구의 절반이 경제적 빈곤을 바탕으로 우울증이나 신체적 질병과 싸워야 하는 현실이다. 이러한 기간이 지속되면 결국 자살과 같은 극단적 선택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한국은 10만 명 당 81.9명의 노인자살이 발생하며, 일본(17.9명)이나 미국(14.5명)과는 달리 연령이 높아질수록 증가세가 두드러진다. 2010년 전체 자살자 1만5566명 가운데 28.1%인 4378명이 65세 이상이다. 특히 80살 이상 노인자살자수는 1119명으로 10만 명 당 116명이다. 이 수치는 10대 청소년의 3배, 20대의 6배나 높은 비율이다. 한국인의 자살률은 OECD국가 중 1위다.
백세 시대에 연착륙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이 필요한가.
첫째, 배우자와의 관계회복이 가장 중요하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과 가장 가깝고 소중한 사람이 가족이라는 사실을 간과한 채 살아간다. 자신이나 배우자 둘 중 하나가 중병에 걸리거나 죽음을 앞둔 상황에 처해야 비로소 후회한다. 수명연장과 비례해 부부가 해로하는 시간도 길어지므로 젊어서부터 꾸준히 배우자와의 관계를 관리하는 일이야말로 노후를 위한 가장 확실한 보험이다. 부부가 아무리 일심동체라 해도 서로에게 맹목적으로 의지하기 보다는 행복한 공존을 위한 다양한 노력도 필요하다.
둘째, 일과 휴식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일에 중독되어 몸이 긴장상태에 놓이면 질병에도 취약해지므로, 적절한 휴식을 통해 몸과 마음을 이완시켜야 한다. ‘꿈’에 대한 환상이나 강박관념으로부터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다. 높은 직위나 많은 수입을 보장받지는 못하더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직업을 선택한다면 같은 일을 하더라도 힘이 덜 들 것이다.
셋째, 물질의 감옥에서 벗어나야 한다. 열에 아홉은 노후에 대한 가장 큰 불안요인으로 경제적인 문제를 꼽는데 욕심을 줄일수록 문제해결은 좀 더 간단해진다. 거주지를 도시에서 시골로 바꾸는 것만으로도 굶지는 않는다.
넷째, 젊어서부터 고독과 친해지기 위한 단계적인 훈련이 필요하다. 수시로 사색과 명상의 시간을 갖고, 독서·산책·등산·음악 감상·악기 연주 등 혼자서도 즐길 수 있는 방법 하나쯤은 익혀 두어야 한다. 졸지에 사랑하는 가족을 잃거나 기력이 쇠하고 병이 들어 바깥출입을 할 수 없을 때 혹은 주변 사람들이 바쁠 때, 혼자 노는 법이 얼마나 유용한지를 뼈저리게 느끼게 될 것이다. 홀로 있음을 즐기면 우울증에 빠지지 않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방치되거나 스스로 고립되는 것이 아닌 스스로 즐기는 것을 말한다.
다섯째, 인적 네트워크의 운용의 미를 살려야 한다. 너무 가까우면 데이고 너무 멀면 추운 것이 인간관계이다. 사람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나 기피보다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상대방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마음을 갖는다면 서로를 구속하지 않고도 원만한 관계를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여섯째, 웰빙 못지않게 웰다잉의 중요성을 인식해야 한다. 얼마나 사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사느냐이다. 어떤 삶을 사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자신의 의지에 달려 있다. 인생에서 만나는 모든 상황이나 문제는 결코 달라지지 않는다. 다만 그것을 대하는 사람의 의지에 따라 극복할 수도 좌절할 수도 있다. 살아 있는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산다면, 썩지 않은 육신은 하느님을 만나는 통로가 될 것이며, 그 통로를 통해 삶의 지혜가 흘러들 것이다.
지상에 태어난 생명체는 그 어떤 것도 죽음 앞에 예외가 없다. 백세족의 반열에 들건 그렇지 못하건 인간다운 품위를 잃지 않고 자기다운 삶을 살다가, 언제라도 모든 걸 의연하게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 늘어난 삶이 결코 짐이 아닌 기쁨이 될 수 있도록 다함께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20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