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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관한 글

밤하늘의 추억

by 책벌레아마따 2015. 8. 27.

                                                           밤하늘의 추억

                                                                                                                             2015년  8월  25일

 

 

 별에 관해서라면 추억거리가 그리 빈약한 편은 아니다. 내가 어릴 때는 서울의 밤하늘이 별 볼 일 없는 지금과 사뭇 달랐다. 한여름 밤 가족들과 집 앞 평상에 둘러앉아 있으면 당장이라도 별이 쏟아져 내릴 것만 같았다. 아마 그때 그 뭇별 가운데 하나가 내 가슴에 콕 박힌 게 틀림없다. 별을 이토록 좋아하게 된 것을 보면.

 

 아들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내 유년의 따스한 기억을 아이와 공유하려는 마음에 별을 찾아 동네 앞산에 올랐다. 한겨울 추위도 아랑곳 않고 보온병과 휴대용 담요와 깔판을 배낭에 챙겨, 으스스한 밤길을 씩씩하게 나서던 두 모자였다. 귀가 떨어질 듯해도 신났던 것이 밤공기가 차가울수록 별은 더 많이 나왔다. 시야가 탁 트인 산언덕에 자리를 잡고는 담요를 덮어쓴 채로 뜨거운 차 한 잔에 언 몸을 녹여 가며 별똥별(유성)을 마중했다.

 

 그새 별들이 뜨며 숱한 밤이 찾아왔고 별들이 지며 숱한 밤이 떠나갔다. 그리고 20138, 신문과 방송은 진작부터 분위기를 띄우느라 페르세우스자리 유성우가 펼칠 환상의 이벤트를 대대적으로 광고하기 시작했. 관측 시간은 13일 새벽 2시부터 해뜨기 직전, 극대기(전성기)는 새벽 4시쯤으로 예상했. 어느덧 대학생으로 자란 아들이 마침 여름방학을 맞아 집에 내려와 있던 터라 오랜만에 의기투합하여 이에 동참하기로 했다.

 

 페르세우스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영웅이다. 거울방패를 이용하여 괴물 메두사의 목을 자른 뒤, 하마터면 괴물 고래의 제물이 될 뻔했던 안드로메다 공주를 구해 돌아온다. 밤하늘 북동쪽에서 아내 안드로메다, 장인 케페우스, 장모 카시오페이아와 함께 단란한 가족별자리를 이루고 있다. 페르세우스 유성우는 이름 그대로 페르세우스자리를 중심으로 방사형, 즉 우산살 뻗은 형태로 쏟아진다. 유성우란 지구가 태양 주위를 공전하는 동안 혜성이 지나간 자리를 통과할 때 유성이 마치 빗살처럼 떨어지는 천문현상을 일컫는다.

 

 드디어 디데이 새벽 2시 반, 근처 학교 운동장으로 출두했다. 그리고 운동장 한 복판에 돗자리를 펴고 누워, 하늘 전체를 초대형 스크린 삼아 우주 쇼 감상에 들어갔다. 그간 쌓아 둔 나름의 노하우가 있기에, 한여름이라 해도 야밤에 집 밖에서 두어 시간 머물 것을 감안하여 무릎담요와 보온병을 준비했더니 역시나 탁월한 선택이었다.

 

 막간을 이용해 두런두런 이야기꽃도 피웠다. 그러고 보면 아들에 관한 태몽 둘 중 하나는 커다란 흑돼지가 힘차게 달려와 내 품에 덜썩 안기는 돼지꿈이었고 다른 하나는 별 꿈이었다. 천지사방이 갠지스 강가의 모래알만큼이나 빼곡한 별들로 찬란했다. 내 몸은 허공에 붕 떠 있고, 그때 머리 위 11시 시계방향에서 유난히 크고 영롱한 별 하나가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 별을 잡으려고 마침 그곳에 놓인 사다리를 대여섯 칸 정도 타고 올라가 힘껏 손을 뻗었다. 안타깝게도 그 순간 꿈에서 깨어나고 말았지만, 스무 해도 전에 꿈속에서 본 밤하늘이 마치 간밤의 꿈인 양 뇌리에 선하다.

 

 “별을 못 땄으면 그건 나쁜 꿈 아니에요?” 하는 걸 보니, 아들 역시 엄마가 별을 따지 못한 게 못내 아쉬운 모양이다.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도 별똥별이 드문드문 떨어졌다. 별 하나에 사랑과 추억과 어머니를 노래한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이며 알퐁소 도데의 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뤼브롱 산의 스무 살 청년 목동은 주인댁 따님인 스테파네트에게 연모의 정을 가지고 있다. 그러던 칠월 어느 날 아가씨가 식량을 싣고 직접 산에 올라왔다가, 갑작스레 물이 불어 집으로 가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목동이 있는 산으로 되돌아온다. 사랑하는 아가씨와 나란히 앉은 목동의 가슴은 마냥 떨려오고 밤은 점점 깊어가던 그때, 별똥별 한 줄기가 두 사람의 머리 위를 스치듯 떨어진다. "저게 뭐람?" 스테파네트의 말에, "천국으로 들어가는 영혼입지요." 라고 목동은 대답한다.

 

 시간 당 100개의 유성우가 쏟아질 거라던 기대에는 한참 못 미쳤지만, 새벽 4시쯤 되니 과연 그 속도가 엄청났다. 아들과 하늘을 절반씩 책임지고는 최대한 눈을 깜빡이지 않으려 용을 쓰는데도 휙휙 스치듯 떨어지는 별들을 모두 포착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둘이서 별이다!” 소리친 것을 잘 헤아려 보니 5,60개는 족히 된다. 당연히 평생 만났던 별똥별을 합친 것보다 많은 숫자다.

 

 젊은 날에는 한국 표준시의 기준인 동경 135°선이 지나는 일본 아카시(明石) 천문대에서 휘황한 별빛에 온몸을 물들였고, 페르세우스 유성우에 별빛 샤워를 하던 지지난해 여름밤에는 아들과 함께 만든 포근한 추억에 가슴을 적시었다. 그 밤, 밤하늘 빛(天玄)이 바로 도덕경에 등장하는 ()’의 빛깔임을 거듭 확인했다. 다만 한 가지, 그 광대무변의 하늘 아래에서 못내 아쉬웠던 것은 별똥별 머무는 만큼이나 짧은 인간의 시간이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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