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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관한 글

삶과 죽음

by 책벌레아마따 2015. 7. 21.

                                                    삶과 죽음

 

                                                                                               2015년 7월 20일

 

 

 집에서 제법 떨어진 밭까지 걸어가자면 마을을 가로지르거나 아니면 산으로 돌아내려 가야 하는데, 평탄한 마을길을 놔두고 모처럼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산길을 넘어 보았다. 그런데 밭에 거의 다다를 무렵 전에 없던 생소한 묏자리가 눈에 들어온다.

 

 두 평 안팎의 봉분도 없는 단출한 형태로써, 비료 포대만한 상석 하나와 상석 절반 크기의 묘석 두 개가 전부다. 허례허식과는 거리가 먼 그 소박함에 끌려 왠지 이다음(?) 벤치마킹하고픈 마음까지 들었다. 어쨌든 산기슭이라 인가도 없고 쓸쓸하던 차에 산 자건 죽은 자건 새로운 이웃이 생기니 반갑다.

 

 장묘(葬墓) 문화는 시대와 민족에 따라 다양한 변천사를 보인다. 가장 보편적인 것은 시신을 땅에 묻는 매장이다. 토장(土葬)이라고도 하며, 한국과 중국은 물론 이슬람권에서도 행해져 왔다. 화장은 시신을 불에 태운 뒤 유골을 추슬러 골분으로 만든 다음, 유골함에 넣어 땅에 묻거나 납골당에 안치한다. ··일을 비롯해 유럽과 미국에서 널리 성행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삼국시대부터 승려의 시신을 화장하는 다비(茶毘) 풍습이 있었다. 다비란 인도어로 화장을 뜻한다. 수장은 강이나 바다에 시신을 가라앉혀 장사 지낸다.

 

 천장(天葬)은 조장(鳥葬)이라고도 하며 시신 처리를 독수리나 까마귀 같은 새에게 맡긴다. 새가 시신을 쉽게 해체할 수 있도록 절단한 시신을 산 중턱에 안치한다. 티베트인들은 독수리가 죽은 사람의 육신과 영혼을 하늘로 데려간다고 믿는다. 장례를 주관하는 천장사도 사람인지라, 술을 마시지 않고는 시신을 훼손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고산지대이다 보니 산소가 희박하여 불을 피우기가 어렵고 나무도 귀해서, 천장을 대체할 만한 장묘 방법을 찾기가 쉽지 않은 듯하다.

 

 풍장은 자연 상태에서 시신의 살이 해체되기를 기다렸다가 유골을 수습하여 안치한다. 우리나라 전라도 지방에서도 풀 무덤에 시신을 안치한 뒤 나중에 유골을 따로 거두는 풍장이 행해졌다. 수상장(樹上葬) 또한 시신을 나무 꼭대기나 가지 사이에 올려 두었다가 살이 전부 해체되고 나면 유골을 땅 속에 묻는.

 

 미라장은 시신에 화학적 처리를 함으로써 부패하지 않도록 하는데, 내세를 중시하는 고대 이집트인들이나 잉카인들의 영생불멸에 대한 소망이 담겨 있다. 실내 안치장은 유럽의 왕족이나 귀족 또는 성직자들 사이에 행해지던 장묘제다. 방부 처리된 시신을 관에 넣어 궁전이나 교회 지하에 안치했다.

 

 이 밖에도 생전에 우주를 동경하던 사람의 골분을 캡슐에 담아 우주로 운반해서 뿌리는 우주장, 수백 발의 폭죽에 골분을 담아 밤하늘에 쏘아 올리는 폭죽장, 시신을 -200도 이하로 얼린 뒤 충격을 가해 가루처럼 분해하는 냉동장이 있다. 유골에서 추출한 탄소로 인공 다이아몬드를 만들어, 유족이 언제든 몸에 지니고 고인을 추모할 수 있게 한 다이아몬드장도 호응을 얻고 있다. 자연장은 수목장이라고도 하며 최근에 많은 호응을 얻고 있는 장묘제로, 화장을 마친 골분을 나무 밑에 뿌려 자연스레 흙과 섞여 자연으로 돌아가게 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무덤 형태는 청동기시대부터 철기시대 초기에 성행했던 고인돌이다. 삼국시대 이전에는 시신을 일단 매장한 뒤 살이 해체되면 유골을 수습하여 관속에 넣는 이중 장묘제가 있었다. 삼국시대에는 매장, 통일신라시대에는 화장, 고려시대에는 화장과 매장의 혼용, 조선시대에는 매장이 이루어졌다. 대체로 불교 세력이 강한 시기에는 화장이, 유교 세력이 강한 시기에는 매장이 우세를 보였다.

 

 죽음은 이승과 저승을 잇는 징검다리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이 땅에 잠시 다녀가는 소풍객이다. 그러니 이곳에 머무는 동안 한판 신나게 놀다 갈 권리와 의무가 있다. 전에 산길을 걷다 우연히 만난, 잔디 지붕 아래 어느 저승 선배가 나에게 귀띔해 준 말이 있다.

 

 ‘때 되면 드시고 때 되면 쉬시게. 사랑도 미움도 분노도 다 내려놓으시게. 이리 살아도 한 세상 저리 살아도 한 세상인 것을. 서두를 것 없고 욕심 부릴 것 없다네. 인생 마음껏 즐기시고 훗날 내 곁으로 와 이웃 되어 주시게나.’

 

 삶이 있으면 죽음도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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