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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관한 글

'서부전선 이상 없음'

by 책벌레아마따 2015. 9. 9.

                                            ‘서부전선 이상 없음

 

                                                                                                                      2015년 9월 8일

 

 지난달 초순, 아들이 상병 계급장을 달고 난 뒤로 두 번째 휴가를 나왔다. 군용트럭, 기차, 전철, 시외버스, 승용차를 차례대로 갈아타고 8시간쯤 걸려서야 집에 도착이다. 당연히 귀대할 때는 오던 길의 역방향으로 다시 그 먼 길을 간다. 부모 걱정 끼칠만한 이야기는 통 하지 않는 성격에 오죽했으면 멀기는 좀 머네요.” 한 마디 한다. 휴가라고 며칠 받아 봐야 오고가는 데 거의 이틀을 까먹고 나면 집에 머무는 시간은 고작 사나흘이다.

 

 이리로 이사 온 것을 크게 후회해 본 적은 없지만 아들이 방학 때마다 서울과 집을 오르내리고, 군대 입대하여 휴가 때마다 먼 길을 오고가는 것을 보면 가슴이 짠하다. 집에 와도 친구를 만나러 외출하려면 교통이 불편하고 집 근처에 문화시설이나 편의시설이 있는 것도 아니다 보니 거의 제 방에서 조용히 지내다 돌아가기 일쑤다.

 

 집에 온 다음날, 아침상을 차려 놓고는 식사하라고 두어 번 소리를 쳐도 묵묵부답이다. 집에 오니 그간 쌓인 긴장이 풀려서 그런가 짐작하고, 밥보다 잠이 보약이겠다 싶어 그대로 놔두었다. 그런데 해가 중천에 뜨도록 기척이 없어 살며시 방문을 열어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누가 업어 가도 모를 만큼 곤한 잠에 빠져 있다. 몇 달 만에 아들 녀석의 잠자는 모습을 훔쳐보고 있자니 코끝이 찡하다.

 

 햇볕에 그을린 팔뚝에는 손목시계가 채워져 있고, 베개 바로 옆에는 군번줄(인식표)이 놓여 있다. 매일 밤 불침번을 서고, 하루 24시간 출동 명령을 기다리는 생활에 자신도 모르게 길들어진 모양이다. 몇 가지 먹고 싶다는 음식을 주문 받아 오랜만에 솜씨를 발휘해 정성껏 상을 차려 주었건만 가만히 보니 화장실을 들락거린다. 이제는 엄마가 해 주는 사제 음식도 다 소용없고 어느새 뱃속까지 군대 모드로 바뀐 것 같다.

 

 꿈같은 몇 날이 흐르고 귀대 하루 전날인 10, 방송사마다 경쟁이라도 하듯 긴급 뉴스를 내보냈다. 84일 서부전선 DMZ에서 목함지뢰가 폭발하여 우리 군인 두 명이 신체 손상을 입었다는 뒤늦은 보도였다. 국가를 위한 값진 희생이라고 위로해 주고 싶다. 그나저나 우리 아들은 폭발 사고 현장과는 지근거리인 서부 전선 턱 밑에서 근무하기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밤새 뜬눈으로 보내고 나니 어김없이 이별의 시간은 코앞에 다가와 있다. 터미널에서 남편과 교대로 군복 입은 아들 녀석을 힘껏 품에 안아 주고 버스에 올려 보냈다. 아이를 기다릴 때는 공연스레 마음이 들뜨고 신이 났지만, 이제 부대로 돌려보내려고 하자 철 지난 여름 바다의 쓸쓸함 같은 것이 목 밑까지 차올랐다. 기다리고 떠나보내고 다시 기다리고 또 다시 떠나보내고, 이런 게 어미의 숙명이란 말인가.

 

 그런데 집안 곳곳에 남아 있는 아들의 온기가 채 사라지기도 전, 이별의 아쉬움을 잊게 만드는 상황이 전개되었다. 아들이 부대로 복귀한 뒤 한반도가 점점 전운에 휩싸여 갔기 때문이다. 목함지뢰 사건 대응 차원에서 우리가 11년 만에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한 것에 대한 보복으로, 북한이 연천 포격도발을 감행했고 우리 군의 대응 사격도 이어졌다. 북한은 전면전도 불사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함과 동시에 '준전시상태'를 선포했다. 48시간 안으로 대북 확성기를 철거하라는 요구를 무시하고 우리가 강경 대응이라는 원칙 아래 팽팽하게 맞서자, 남북 간 무력충돌의 긴장감은 최고조에 달했다. 우여곡절 끝에 남북 고위 당국자 간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되었지만 놀란 가슴은 쉬이 진정되지 않았다.

 

 모처럼 아들 부대에도 평온이 깃들었는지 엊그제 전화가 걸려 왔다. 하루 24시간 철통같은 경계태세를 갖추고 한 마디로 전시 체제였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전쟁 이후 남북 간 가장 첨예한 대립과 갈등 상황이 아니었던가. 군인의 신분으로 겪은 극한체험의 기억들은 아들의 뇌리에서 평생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아들은 지금 이달 중순까지 이어지는 야전훈련에 참가 중이다. 지난번 훈련 때는 자다가 텐트에 비가 새서 물벼락을 맞기도 하고 텐트가 바람에 날아가기도 했다고 한다. 전방은 이미 밤 기온이 많이 낮아진 상태인데 2,3주 동안 한데서 먹고 자며 훈련을 받아야 하는 부대원들을 봐서라도 비만은 오지 말았으면 좋겠다. 지난번 사건을 생각하면 시한부 평화일망정 긴박감에서 벗어나 전쟁이 아닌 훈련을 치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스럽고 감사하다.

 

 아들과 친구들은 지금 동부 전선, 중부 전선, 서부 전선에 고루 포진하여 물 샐 틈 없는 국토 방어에 여념이 없다. 그들이 있는 한 우리의 전선은 결코 뚫리지 않을 것으로 믿는다. 아들이 입영 통지서를 받은 날로부터 전역하는 날까지의 39개월을 날짜로 따지면 1184일이다. 이제 225일 남았다. 북한의 군인 의무복무기간이 10년이라는 말이 가장 큰 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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