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뜻 바로 알기
22대 총선이 막을 내렸다. 유권자의 선택을 받은 당선인들이 국민의 대변자로서 그 엄중한 역할과 사명을 깊이 새겼으면 한다. 유감스럽게도 국민의 대다수는 정치인 하면 부정적인 이미지를 먼저 떠올린다. 일부 정치인들의 일탈로 인해 한국 정치가 신뢰를 잃은 탓이다.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는 길은 분골쇄신하는 노력뿐이라 여겨진다.
정치인들의 대표적인 법률 위반 행위는 직권을 남용한 뇌물 수수나 청탁이다. 여기에 힘없고 배경 없는 서민들의 마지막 희망의 보루인 공정의 사다리마저 박탈한다.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니다. 의혹이 확실시되는 상황에서도 단순 실수나 착각이라 주장하며 책임 회피에 급급하다. 그 와중에 본인에게 불리한 정황만 콕 집어 망각하는 선택적 기억력을 과시한다. 이 같은 황당무계한 변명과 태도가 국민들로 하여금 불신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후 언론 보도가 쏟아지고 여론은 악화일로를 걷는다. 더 이상 둔사가 통하지 않을 성싶은 이때 드디어 태도 변화가 관찰된다. ‘이유 불문하고 국민께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는 발언이 나오는 배경이다. 그러나 사과를 요구하니 사과할 뿐 딱히 잘못은 없다는 식의 속내를 에둘러 표현한 듯해 그다지 울림은 없다. 진심으로 반성한다면 자신의 과오를 모를 리 없다. 잘못이 명시되지 않은 사과는 허울뿐인 사과에 지나지 않는다.
한 술 더 떠 불편한 심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한다. ‘그때는 그게 합법적이었고 다들 그렇게 했다, 왜 나만 범죄자로 낙인을 찍느냐’며 반발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불법의 평등’의 역설인 셈이다. 이는 물건을 훔치다 붙잡힌 도둑이 ‘세상에 도둑이 많은데 혼자 처벌받는 건 억울하다’고 항변하는 것과 같다. 그런데 양심과 도덕성이 결여된 언사 혹은 행위에 대한 그릇된 인식은 직접적인 행위 못지않게 위험하다고 판단된다.
한 사람을 끝까지 속이고 많은 사람을 잠시 속이는 것은 가능할지 모르지만 많은 사람을 끝까지 속이지는 못한다. 자칫 영구미제사건이 될 뻔했던 불법·부정·비리들이 측근의 양심 고백에 힘입어 백일하에 드러날 때가 있다. ‘거짓은 진실을 이길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지은 죄를 감추고 숨겨 봤자 악업만 쌓일 뿐이다.
법이 만인에 평등하다면 대상에 따라 법 적용과 해석이 달라질 이유가 없다. 따라서 정치인에게 유독 높은 기준을 적용해야 할 당위성은 없다. 다만 사회지도층으로서 누리는 신분상의 권리나 혜택을 감안할 때 일반인에 비해 높은 도덕적 기준과 윤리 의식이 요구되는 것은 보편적 상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권 의식에 사로잡힌 소수의 정치인들이 법적 형평성에 어긋나는 특혜를 요구하여 비난을 자초한다.
‘국민의 뜻이라면, 국민의 뜻에 따라, 국민의 뜻을 새기고, 국민의 뜻을 받들어’ 등은 정치인들이 특히 코너에 몰렸을 때 애용하는 단골 멘트다. 본인은 아무런 정치적 욕심이 없건만 국민의 간청에 등 떠밀려 총대를 멘다는 투의 뉘앙스를 풍기는 이 말에 정작 국민은 동의하기 어렵다. 사리사욕과 당리당략의 의혹은 모르쇠로 일관하면서 국민 중 누가 그리 목을 맨다고 걸핏하면 ‘국민 팔이’를 하는 것인가.
대한민국은 그동안 사회 전반에 걸쳐 자타 공인 괄목할 만한 성장과 발전을 이루고도 정치 분야만큼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정치인들만 잘 하면 된다고 국민들이 누누이 강조하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정치는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기술’이라는 말이 있다. 언감생심 거기까지는 바라지 않고 볼썽사나운 이전투구의 양상이라도 사라지면 다행이다. 국가신용등급 상승도 중요하지만 정치 수준부터 한 단계 발전되기를 소망한다.
2024. 4. 18.
'삶에 관한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울 별곡 (2) | 2024.06.14 |
---|---|
푸공주 푸바오, 안녕 (0) | 2024.05.16 |
귀하지 않은 목숨은 없다 (0) | 2024.03.26 |
‘팽목항’의 기적을 소망하며 (0) | 2024.03.16 |
마음으로 듣는 음악 (5) | 2024.03.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