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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관한 글

푸공주 푸바오, 안녕

by 책벌레아마따 2024. 5. 16.

푸공주 푸바오, 안녕

 

 

자연계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은 저마다의 생김새를 가지고 저마다의 방식대로 살아간다. 나름의 생존 전략에 맞춰 진화한 건지 아니면 그렇게 태어난 개체들만 살아남은 건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동물은 식물과 비교해 두드러진 차이가 있다. 언제 어떻게 움직일지 판단과 결정이 필요한 동물에게는 한자리에 붙박이로 살아가는 식물과 달리 뇌가 있다는 점이다. 또한 동물의 눈동자는 제각각 처한 환경 속에서 생존에 적합하도록 설계되었다.

 

동물 가운데에도 육식동물과 초식동물은 눈동자의 모양새가 다르다. 고양이, 여우, 늑대, 악어 등 육식동물은 눈동자가 세로로 길고 두 눈의 간격이 좁다. 사냥에 나선 포식자는 달아나는 피식자를 뒤좇아 직진 방향으로 전력 질주한다. 이때 세로형 눈동자를 통해 피식자와의 원근 거리를 계산하여 사냥 효율을 높인다. 눈앞의 먹잇감이 흐릿해지면 그만큼 거리가 벌어진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초식동물인 양이나 염소의 눈동자는 가로로 긴 형태이며 육식동물에 비해 두 눈의 간격이 넓다. 이 같은 가로형 눈동자는 넓은 시야에서 지상의 움직임을 파악하기에 유리하다. 다시 말해 주변의 포식자를 효과적으로 경계할 수 있다. 비록 초점의 정확도는 떨어지지만 경계 대상을 인지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 공중에 날아다니는 새들로부터 공격당하는 일은 없으므로 지상의 포식자 방어에만 집중하면 된다.

 

그런데 모든 육식동물의 눈동자가 세로로 긴 것은 아니다. 대형 육식동물이자 최상위 포식자인 사자나 호랑이는 눈동자가 둥글다. 그 밖에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기 순위에 오른 동물들을 보면 호주의 마스코트라 불리는 코알라를 포함해 공통적으로 둥근 눈동자를 가졌고 표정은 비교적 온화하다. 인간 친화적 동물의 대표 격인 개도 사람을 닮은 둥근 눈동자를 가지고 있다. 게다가 동물의 눈이 일반적으로 검은 눈동자로만 채워진 데 반해 흰자위가 섞인 개의 눈은 다양한 감정 표현이 가능하다.

 

최근 국민적 인기를 누리는 매력 만점 동물이 있다. 동그란 눈동자와 눈 주변의 검은 무늬, 솜뭉치 같은 두루뭉술한 몸매를 소유한 세계적 멸종 취약종인 자이언트 판다 푸바오가 화제의 주인공이다. ‘푸바오의 출생지는 용인의 한 놀이공원이며 2020년 여름 엄마 아이바오와 아빠 러바오사이에서 태어나 용인 푸 씨가 되었다. 깜찍발랄함과 요염한 뒤태를 무기 삼아 사람들을 마구 홀려 대니 행복을 주는 보물이란 이름이 헛되지 않다.

 

푸바오 가족은 우리에게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즐거움과 감동을 선사해 주었다. 새끼를 품에 안고 젖을 먹이는 모성적 본능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천방지축 나대는 새끼의 목덜미를 물고 단호하게 제지하는 양육 방식도 흥미롭다. 나무를 타는가 싶으면 쿵 떨어지고 앞구르기를 하고 푹 퍼져 앉아 댓가지를 먹는 모습을 보면 절로 웃음보가 터진다.

 

푸바오는 엄마의 사랑과 사육사들의 정성어린 보살핌과 판다 팬들의 뜨거운 관심 속에서 무럭무럭 성장했다. 그러던 중 지난달 4월 중국 쓰촨성 자이언트판다보전연구센터로 훌쩍 떠났다. 국가 간 우호 증진의 일환으로 해외에 임대한 판다가 출산할 경우, 새끼 판다를 만 4세 전에 중국으로 돌려보내야 하는 협약 때문이다.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중국의 특정 지역에만 서식하는 판다에 관한 모든 소유권은 중국에 있다.

 

초상권도 포기한 채 맹활약한 푸바오 덕분에 동물에 대한 편견이 많이 깨졌고 동물도 감정을 가진 존재라는 공감이 생겼다. 푸바오는 말 없는 말로써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동시에 많은 과제도 남겼다. 이제 동물원은 단순히 입장료를 지불하고 우리에 갇힌 동물을 구경하는 장소가 아닌 동물과 사람 간 교감과 소통의 공간으로 바뀌어야 한다. 동물원 관람 예절과 문화에 변화의 바람을 기대한다. , 화풀이 삼아 반려견을 아파트 창문 밖으로 내던지는 식의 인간에 내재된 잔혹성에 대한 깊은 성찰과 반성이 우선이다.

 

푸바오는 사람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할 얼굴상이라 어딜 가든 잘살 거라 믿는다. 이별은 아쉽지만 독립적인 생활이 판다의 본능이라 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끝으로 이 말이 푸바오에게 가닿을 수 있다면 좋겠다. 푸바오가 우리 곁에 온 것은 판다 외교적 맥락에서가 아니라 한국 국민으로부터 무진장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였노라고.

2024. 5.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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