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삶에 관한 글

서울 별곡

by 책벌레아마따 2024. 6. 14.

서울 별곡

 

서울은 조선의 태조 이성계가 도읍한 이래 6백 년의 역사를 간직한 명실상부 대한민국의 심장부다. 한국전쟁의 상흔을 딛고 세계 유수의 국제도시로 성장한 오늘이야 그 위풍과 세련미를 만방에 자랑할 만하다. 하지만 경제 발전이 궤도에 오르기 전인 1970년대까지도 한국 근현대사의 이면에 드리워진 암울을 대변하듯 대개가 무채색 풍경이었다.

 

그렇더라도 무미건조한 나날의 연속은 아니었다. 여름이면 한낮에는 한강 백사장에서 신나게 뛰어놀고 밤에는 집 앞 평상에 누워 별빛에 빠져들었으니 말이다. 동지섣달에는 밤새 연탄가스에 중독된 아무개 씨가 동치미 국물을 퍼 나른 이웃의 정성으로 목숨을 보전한 미담 사례가 드물지 않았다. 그리고 새 동네로 옮겨가면 시루팥떡을 돌리며 신고식부터 하는 게 관례였다. 레슬링 혹은 권투 시합 날에는 흑백TV가 있는 집이나 동네 다방에 모여 단체응원전도 펼쳤다. ‘2002 한일 월드컵을 후끈 달군 붉은 악마의 효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듯 너나없이 옹색한 살림살이건만 인정의 꽃은 시들지 않았다.

 

우리 집 문간방에 곁방살이를 하며 국수를 만들어 팔던 가족이 있었다. 기다란 막대기에 젖은 국수를 널어 대문 밖에 줄지어 세워 놓으면 국수 가락이 바람에 하얀 주렴처럼 흔들리던 풍경이 뇌리에 선하다. 팔다 남은 국수를 얻어먹던 그때 입맛이 들었는지 이제도 가끔 밀것이 당긴다. 동네 어귀의 중국집에서 어쩌다 맛보는 짜장 한 그릇이 외식의 전부일 때라 국수는 밥보다 반가운 별식이었다.

 

나의 유년을 대표하는 추억 공간은 바로 역사책에서 방금 튀어나온 듯한 숭례문과 덕수궁과 창경궁이다. 남산 산책길에 오다가다 마주치는 것이 숭례문이요 국민 학교 소풍 장소는 으레 덕수궁인데다 봄나들이 벚꽃명소로 즐겨 찾던 곳이 창경궁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백범 선생을 비롯한 애국지사의 묘역이 있는 동네공원을 풀 방구리에 생쥐 드나들 듯했다. 은연중에라도 어린 가슴에 독립투사의 얼이 새겨지지 않았겠는가.

 

예나 제나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키는 남산은 서울 시민의 으뜸가는 쉼터였다. 더군다나 내게는 야외 음악당, 약수터, KBS 방송국, 국립 도서관, 식물원, 꽃시계와 얽힌 알록달록한 추억을 선물해 준 특별한 장소다. 남산의 명물인 케이블카는 서울 나들이에 나선 지방민들에게 인기 1순위였다. 그야말로 화려함의 대명사라 일컬어지던 곳은 명동이다. 명동 성당, YWCA, 코스모스 백화점, 로얄 호텔, 숱한 음악다방과 음식점과 유흥업소, 거기에 유행의 첨단을 걷는 여성들의 통통 튀는 옷맵시까지 어우러져 명동을 찾는 이들을 그저 달뜨게 만들었다. 그나저나 땡땡종소리를 내며 노면 레일 위를 느리게 미끄러지던 전차는 1968년 역사의 뒤안길로 영영 사라지고 말았다.

 

독립선언서가 낭독된 탑골공원, 박공지붕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이 왠지 처연한 슬픔을 자아내던 비 오는 날의 종묘 정전,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몇몇 개봉관, 덕수궁 돌담길과 정동교회, 인사동과 갤러리, 피맛골과 광장시장, 퇴계로와 충무로, 낙원상가와 떡집 골목, 마로니에공원, 자하문 밖 자두 밭, 뽀얀 먼지 얌전히 뒤집어쓴 청계천 헌책방과 없는 것 빼고 다 있다는 세운상가, 황학동 벼룩시장, 국밥집 아줌마의 인정이 뚝배기 가득 흘러넘치던 청진동 해장국집,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 산다던 진흙투성이 허허벌판의 말죽거리 등, 발길 닿는 곳곳마다 사람 냄새가 풀풀 피어올랐다.

 

그러나 사람 사는 곳에 어찌 가슴 시린 속사정이 없을까. 예컨대 수백 평짜리 호화저택이 즐비한 부촌 그 맞은편 달동네에서는 대여섯 식구가 단칸방에 옹기종기 모여 살았다. 화려한 네온사인이 점멸하는 백화점과 서민들의 애환이 서린 남대문 시장도 서로 이웃하고 있다. 하기야 도심 한복판에서 오랜 세월을 조선 궁궐과 현대식 빌딩이 어깨를 겨눈 채 극단적인 대비를 뽐내고 있지 않은가. 부조화 속의 조화로움 역시 서울의 한 단면이다.

 

그때 그 시절, 물질적으로는 풍요롭지 못해도 나름의 목가적 낭만과 운치가 있었기에 삶이 팍팍한 것만은 아니었다. 정녕 서울은 나의 살과 뼈가 자라고, 정신과 영혼이 살찌고, 청춘의 고뇌가 싹트고, 꿈과 소망과 사랑과 우정이 꽃피던, 엄마의 자궁처럼 푸근한 곳이다. 그 고향을 등지고 나서 이따금 빛바랜 추억의 실타래를 더듬어 옛 기억을 떠올릴 때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여우도 죽을 때는 고향 언덕을 향해 머리를 둔다고 한다. 하물며 추억을 먹고 사는 존재인 인간으로서 자신이 나고 자란 곳을 그리워함은 인지상정이 아니겠는가.

2017. 7. 11.

'삶에 관한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람 냄새 물씬한 ‘카모메 식당’  (0) 2024.07.25
빈집 앞에서  (1) 2024.07.02
푸공주 푸바오, 안녕  (0) 2024.05.16
국민의 뜻 바로 알기  (6) 2024.04.18
귀하지 않은 목숨은 없다  (0) 2024.0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