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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관한 글

빈집 앞에서

by 책벌레아마따 2024. 7. 2.

빈집 앞에서

 

자주 오가는 산책길에 당장 눈앞에서 무너져 내린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것 없는 집 한 채가 위태롭게 서 있다. 어느 날 그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방 두 칸과 부엌이 나란히 놓인 일자형 구조가 왠지 모르게 정겹다.

 

집 크기는 성인 남성 한 명이 운신하기에도 그다지 낙낙치 않을 예닐곱 평 남짓하다. 게다가 얼룩덜룩 곰팡이 핀 벽지, 빛바랜 창호지마저도 거의 뜯겨 나간 문살, 쪼그만 들창, 낡은 시렁, 개다리소반에서 궁핍의 흔적이 묻어난다. 과연 누가 언제 어떻게 얼마나 살았을지 궁금하다. 지금이야 거기 머물던 사람들은 어디론가 모두 흩어지고 빈집만 덩그러니 남았지만 한때는 사람의 온기로 가득했을 게 분명하다.

 

엄마와 아빠 그리고 올망졸망한 자녀들이 밥상머리에 둘러앉아 이야기꽃도 피우고 밤이 되면 모로 누워 서로의 숨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을 청했을 풍경이 눈에 선하다. 그런데 그 허름하고 조붓한 공간에서 진정 행복했을까. 아무렴, 행복했겠지. 호환마마나 가난보다도 외로움이 더 무서운 게 인간의 상정이 아니던가, 온 가족이 서로 살을 맞대고 어우렁더우렁 살았으면 그게 곧 행복이 아니고 무엇인가.

 

사실 마을에 폐가가 있으면 미관상 흉물스럽고 동네 분위기도 우중충하다. 또한 범죄의 온상이 되기도 하고 들쥐나 길고양이의 서식지가 되기도 하니까 빈집을 방치해서 득이 될 건 없다. 빈집 소유주들도 그걸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클레인이 달려들면 그 즉시 해체 가능한 곰삭은 구조물을 여직 놔둔 것은 단지 철거 비용 때문만은 아닐 수도 있다. 행여 어릴 적 추억이 서린 공간과의 작별이 두려워서인가.

 

지난날 누군가에겐 더없이 소중한 보금자리였거늘 인적이 뚝 끊긴 폐건물이 되자 사회 문제로 대두되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지역공동체가 오랜 세월을 함께한 이웃 그것도 재산권과 관련된 문제를 자체적으로 해결하기는 어렵다. 농촌 빈집 활성화 정책 역시 그동안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결국 법으로 강제하려는 움직임 끝에 '농어촌정비법' 개정안이 최근 국회에 상정·의결되었다. 철거 불이행시 이행강제금의 부과를 주요 골자로 한다.

 

이를 계기로 빈집 정비사업은 탄력을 받겠지만 빈집 소유주들의 고민은 그만큼 깊어질 듯하다. 소유주가 자발적으로 철거하거나 수리하는 게 상책이라 여겨지는데 타인의 사정을 모르니 쉽게 이야기할 수는 없다. 다만 요즘은 농어촌을 오가며 오도이촌(닷새는 도시, 이틀은 시골)’ 생활하는 도시인이 심심치 않게 있다. 이참에 쓰러져 가는 고향집을 살려서 재충전과 휴식의 공간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고려해 봄직하다.

 

한국인에게 집이란 대체 어떤 의미이기에 폐기처분 대상이 된 집조차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가. 한국인의 정서 속에 그 답이 있지 않을까.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문패가 내걸린 집 한 채를 소유하는 게 인생 목표라면 집에 대한 집착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1960년대 초, 국가 현대화의 상징처럼 등장한 아파트가 어느덧 한국인의 대표적인 주거 양식으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도 단독주택을 애착하는 마음은 여전하다고 믿는다.

 

한편 남미,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남태평양 원주민들은 자연에서 얻은 가공하지 않은 상태의 자재를 사용해 집을 짓는다. 나무줄기나 대나무를 얼기설기 엮어 집의 뼈대를 만들거나 진흙을 이겨 흙벽을 세운 뒤 널판장·볏단·갈대·야자수 잎 등으로 벽과 지붕을 감싸 주면 끝이다. 우리 기준에서 보면 많이 허술하지만 추레한 집과 행색에도 아랑곳없이 미소를 잃지 않고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에서 단순미가 느껴진다.

 

만약 전 국민에게 ‘11주택이 보장되든 아니면 앞서 언급한 나라들의 원주민처럼 매사 천하태평인 유전자를 타고나든 둘 중 하나라도 현실로 이루어지면 평생 집 고민만큼은 해소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는 실현 가능성 제로의 망상일 뿐이고 현실은 팍팍하기 그지없다. 턱없이 상향 조정된 중산층 기준치에다 국민평형아파트 분양가마저 껑충 뛴 마당에 상대적 박탈감과 빈곤감만 더 커졌다.

 

여봐란듯 한번 살아 보리라 다짐하며 줄지어 사람들이 떠난 고향마을에 빈집만 쓸쓸히 쌓여 간다. 그나저나 산책길 모퉁이 집 사람들은 지금 어느 하늘 아래서 살아가려나. 누구라도 낯설고 물선 외지에 첫발을 들인 순간부터 타관바치 신세인데 그동안 생활의 고단함도 고단함이려니와 외로움을 어찌 다독였을꼬. 사노라면 문득 따개비만 한 고향집에서 꽁냥꽁냥 티격태격 웃고 울던 시간들이 사무치게 그리운 날도 있으리라.

2024. 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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