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님을 추억함
2014년 2월 16일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님 선종 5주기
1985년 5월, 보드라운 햇살이 온몸을 기분 좋게 감싸던 어느 봄날이었다. 서울 모 본당에 ‘맨인블랙’이 아닌 붉은 주교복 차림의 김수환(스테파노)추기경님이 모습을 드러내셨다. 견진성사를 집전하시기 위해 직접 걸음하신 것이다.
드디어 장엄한 미사 중에 견진성사가 거행되었다. 나를 포함한 230여 견진 세례자들의 이마에는 카리스마 성유와 성수가 흘러내렸다. 기름 부음 받은 자로, 그리스도의 군사로 거듭나는 벅찬 감격에 우리는 환희의 눈물을 흘렸다.
견진식이 끝나고 한 무리의 그리스도 신참군사들과 축하객들이 성전 밖으로 쏟아져 나오자 성당 마당은 금세 북새통을 이루었다. 오가던 형제자매들이 내 곁으로 우르르 다가와 다정스레 인사를 건네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내가 제2독서(요한 2;1-5)를 봉헌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기념사진을 찍는다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오기 무섭게 촬영용 의자가 마련된 곳으로 다시 우르르 몰려갔다.
맹렬 자매님들은 곱게 차려입은 한복 옷고름이 풀어지는지 치맛단이 밟히는지 안중에 없고 추기경님 옆자리를 두고 쟁탈전을 벌였다. 그 틈바구니에서 순진한 이 아가씨는 앞줄에서 탈락하고 뒷줄 그것도 맨 가장자리에 당첨되었다.
추기경님과 주임 신부님 두 분은 계속 자리를 지키시고, 견진세례자들만 번갈아 들락날락하면서 촬영을 하는데도 워낙 사람들로 북적대다 보니 그마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와중에도 성당 담장을 넘어가는 자매님들의 명랑한 웃음소리와, 단지 그 자리에 계신 것만으로도 성당 안팎이 훤해진 것 같은 추기경님의 존재로 인해 그저 행복했다.
견진 대모가 선물한 성물을 축성 받기 위해 추기경님께 다가갔다. 그러자 아마도 ‘수고했다’는 의미가 담긴 듯한 환한 웃음을 지으시며 “어서 와요.”하고 나를 반겨 주셨다. 그리고는 양손을 들어 내 머리를 천천히 감싸시더니, “잘 사세요.”라고 말씀하시는데 그 음성에 봄 햇살 같은 따뜻함이 흥건했다.
“저와 사진 한 장 찍어 주시면 안 될까요?”라고 부탁을 드렸으면 흔쾌히 승낙하셨을 텐데 왠지 그 말을 꿀꺽 삼켜 버렸다. 대신에 앵글을 어떻게 잡을까 고민할 여유도 없이, 사제관으로 오르시는 추기경님을 내 손으로 한 컷 촬영했다.
그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초승달 눈매의 웃음 가득한 얼굴이 당장이라도 눈앞에 클로즈업 될 것만 같다. 세월이 흘러도 그분은 내 푸릇한 기억 속에 새겨진 그때 그대로의 모습으로 여전히 내 가슴 안에 살아 계신다.
점심상을 책임진 자매님들은 추기경님이 좋아하시는 음식 정보를 어디서 입수했는지, 팽이버섯국은 상에 꼭 올려야한다며 야단법석을 부렸다. 지금이야 흔하디흔한 것이 팽이버섯이건만 당시에는 재료를 구하는데 애를 좀 먹었다는 후문을 들었다.
그때는 어린 나이라 ‘잘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몰랐다. 다만 매스컴에 제법 글을 올리던 때인지라, 하늘이 주신 소박한 글재주로 외롭고 힘든 이들의 가슴과 만나 작은 위로와 기쁨이 되리라 마음먹었다. 영혼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세상이야 어떻든 나만은 진흙 속의 한 송이 연꽃처럼 청정한 삶을 살아갈 것을 꼭꼭 다짐했었다. 앞길이 구만 리면 인생길 또한 구만 갈래임을 알지 못하던 철부지였으니까.
오늘은 한국 천주교계와 대한민국 근현대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기시고, 2009년 2월 16일 하늘나라의 부름을 받으신 김 스테파노 추기경님의 선종 5주기이다.
내가 찍은 사진에는 성당 건물의 유리창에 비친 추기경님의 실루엣도 함께 들어 있다. 나는 추기경님께서 언제까지나 우리를 지키는 그림자가 되어 주시리라 믿는다. 그리고 당신의 부재로 허전한 우리 모두의 마음을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실 것이다.
바보 추기경님, 주님 곁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