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앙에 관한 글

고통의 유익

by 책벌레아마따 2013. 12. 22.

 

                                                        고통의 유익

 

                                                                                  2013년 10월

 

 

 

 

 이 땅 위에 머무는 자 누구도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가.

 ‘선한 이웃도 비껴가지 못하는 그 고통의 본질은 무엇일까회의에 빠졌던 시간이 있었다. 도무지 납득되지 않는 의문을 붙들고, 성서나 종교 관련 서적을 뒤지고 신앙 강좌를 찾아다니기도 했지만 좀체 속은 시원하지 않았다.

 

 그리고 세월이 얼마만큼 흐른 후에야 예전에는 몰랐던 삶의 의미들이 어렴풋하게나마 가슴에 와 닿았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삶의 문제를 두고 인간의 이성이나 논리로 접근하려 했던 오류를 인정하면서부터이다.

 

 돌이켜보면 지난 시간 속에서 늘 기쁨과 슬픔은 교차하였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하나둘씩 떠나보내고 병마와 싸우기도 하면서 힘들고 외로웠다. 인간의 삶이란 불가피한 슬픔과 시련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란 것을 깨닫게 된 것도 그런 우울한 경험 이후이다. 그러니 어떠한 순간에도 묵묵히 참고 견뎌낼 도리밖에는 없다. 세상에 결코 나 혼자만 겪는 일이란 없다는 사실이 위안이라면 위안이다.

 

 자기 내면의 신비에 눈을 뜨기 위해서는 고통을 통한 방법이 매우 유효하다고 생각된다. 가족과 재산을 잃고 숨 쉬는 것조차 괴로워서 아픈 마음을 하느님께 쏟아 놓으며 울부짖는 욥과 같이, 고통의 한가운데에 선 인간은 절실하게 하느님에게 매달릴 수밖에 없다. 당신께서는 제 속을 만드시고 제 어머니 배 속에서 저를 엮으신 분’-시편 139,13 이시기에. 삶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들은 반드시 하느님의 섭리에 귀결된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고난과 역경을 통해 우리는 조금씩 영적인 존재로 거듭나게 되리라 확신한다.

 

 육신의 일부분의 통증을 통해 우리의 몸이 하나의 유기체임을 느끼듯이, 자신이 쓰라린 아픔을 경험하고 나면  이웃의 상처를 좀 더 깊이 헤아릴 수 있다.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갈등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이 느끼는 감정의 통증을 상대방도 똑같이 겪고 있음을 알게 될 때, 비로소 갈등과 대립 안에서 자연스레 치유가 일어날 것이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고통의 진정한 의미라고 생각한다.

 

 작은 손거스러미 하나에도 불편해하는 나약한 인간이 산더미처럼 밀려오는 시련 앞에서 담대해질 수 있다면, 그 믿음의 원동력은 과연 어디로부터 오는 것인가. 우리들에게 하느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삶의 문제들을 사랑하고 받아들이라고. 언젠가 우리에게 답을 들려주실 때까지 참고 믿음으로 살아가라고.

 

 내가 가는 길을 주님만은 아시나니 (그분께서는 내 길을 알고 계시니’-욥기 23;10), 이 삶이 다하도록 주님께서는 나의 피난처이시다. 아직 나의 삶은 끝나지 않았다. 삶의 모든 순간마다 승리자가 될 수는 없지만, 당신의 등불이 내 머리 위를 비추고 당신 의 빛으로 어둠 속을 걷는 한(욥기 29;3), 하느님의 자녀로서 맞갖은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으리라 희망한다.

 

 유대교의 랍비 벤 에즈라는 노래한다. ‘늙어가라. 최상의 것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최초의 것은 최후의 삶을 위해 있나니. 우리의 운명은 그분 안에 있는 것.이라고.

'신앙에 관한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난의 역설  (0) 2014.12.09
고난 너머의 행복  (0) 2014.04.05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님을 추억함  (0) 2014.03.20
모든 것은 지나가리라  (0) 2013.03.11
알렐루야 닷컴  (0) 2013.0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