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관한 글118 아로니아 영그는 계절 아로니아 영그는 계절 짙게 그늘을 드리운 나무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매미 울음소리가 계절의 감각을 새삼 일깨워 주는 듯하다. 모처럼 아스라이 멀어진 유년 시절을 추억할 여유가 생겼다. 선풍기가 저 혼자 뱅글뱅글 돌아가는 한옆에서 독서삼매에 빠져 있을 때, 빈 수박화채 그릇에 파리 몇 마리가 달라붙어 졸고 있던 그 나른한 여름날 오후의 풍경 속으로. 그로부터 세월을 훌쩍 건너뛴 지금, 한여름 따가운 햇살 아래 아로니아 열매가 농익어 가는 밭 한 귀퉁이에 서 있다. 묘목을 처음 심을 당시에는 아기 손가락 굵기만 했는데 어느새 성목의 자태를 드러낼 만큼 성장했다. 게다가 해마다 이맘때면 흑진주처럼 까맣고 반지르르 윤기 흐르는 열매를 아낌없이 내어주니 이보다 더 고마울 데가 없다. 아로니아는 ‘초크베리’라.. 2024. 8. 21. 사람 냄새 물씬한 ‘카모메 식당’ 사람 냄새 물씬한 ‘카모메 식당’ 좋은 영화란 어떤 영화인가. 관객의 마음에 온기를 주고, 시간이 흘러도 여운이 남고, 두세 번을 봐도 처음인 듯 새롭고, 요란한 홍보 없이도 알음알음으로 알려진 영화라면 그 기준을 충족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소리 없이 강한 영화 한 편을 소개한다. ‘카모메 식당(원제 ’かもめ食堂‘)’은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2006년 작품이다. 핀란드 헬싱키를 생활의 터전으로 삼은 소시민들의 담백한 일상이 여성 감독 특유의 섬세함으로 맛깔나게 묘사되었다. 요리에 관해 나름의 철학과 열정을 지닌 식당 여주인 ‘사치에’ 역의 고바야시 사토미의 농익은 연기가 일품이다. 보조개 팬 얼굴에 번지는 선한 미소와 단아한 용모가 매력적인 그녀는 일본 내 배우자감 투표에서 1순위로 낙.. 2024. 7. 25. 빈집 앞에서 빈집 앞에서 자주 오가는 산책길에 당장 눈앞에서 무너져 내린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것 없는 집 한 채가 위태롭게 서 있다. 어느 날 그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방 두 칸과 부엌이 나란히 놓인 일자형 구조가 왠지 모르게 정겹다. 집 크기는 성인 남성 한 명이 운신하기에도 그다지 낙낙치 않을 예닐곱 평 남짓하다. 게다가 얼룩덜룩 곰팡이 핀 벽지, 빛바랜 창호지마저도 거의 뜯겨 나간 문살, 쪼그만 들창, 낡은 시렁, 개다리소반에서 궁핍의 흔적이 묻어난다. 과연 누가 언제 어떻게 얼마나 살았을지 궁금하다. 지금이야 거기 머물던 사람들은 어디론가 모두 흩어지고 빈집만 덩그러니 남았지만 한때는 사람의 온기로 가득했을 게 분명하다. 엄마와 아빠 그리고 올망졸망한 자녀들이 밥상머리에 둘러앉.. 2024. 7. 2. 이전 1 2 3 4 5 6 ··· 4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