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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문의 아들에게

겨울의 문턱에 들어섰구나.

by 책벌레아마따 2014. 11. 8.

                           겨울의 문턱에 들어섰구나.

                                                                     2014년 11월 8일

 

 얼마 전 네가 신병 첫 휴가를 나왔을 때 군복 입은 늠름한 너를 보니 얼마나 기쁘고 반가웠는지 모른다. 하지만 짧고도 짧은 휴가를 마치고 부대로 돌아가니 마음이 너무 허전하구나. 부대 내에서 중책을 맡았으니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기 바란다. 네게는 따로 잔소리를 할 필요가 없지만 노파심에서 하는 말이다.

 

  어제가 입동이었어. 이제 슬슬 겨울 모드로 접어드네. 손님이 집을 방문하여 저녁 식사를 함께 했어. 손님이 돌아간 후 아빠와 산책을 하는데 마침 앞산에서 둥글고 환한 보름달이 솟아오르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쏙 얼굴을 내밀더구나. 산등성이로부터 떨어져 나가 마치 공중부양을 하고 있는 듯한 광경이라고나 할까. 그 희한한 순간을 포착할 수 있었던 것이 무척 흥미로웠어. 들판을 걷는데 밤이라 그런지 기온이 많이 떨어져 오싹했어.

 

  네가 왔다 간 다음날부터 고구마 수확에 팔을 걷어 붙였다가 이제야 모두 끝이 났다. 현관 앞부터 대문 앞까지 고구마 폭탄을 맞은 듯한 풍경을 한번 상상해 보거라. 동네 할머니들이 매일 우리 집 마당까지 들어오셔서 마당에 널어놓은 고구마를 재미난 구경거리라도 만난 듯 요리조리 살펴보시곤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서울 촌놈이 어찌 이리 고구마 농사를 잘 지었을까 신기하신가 봐. 요 며칠 친척들과 이웃들에게 택배로 보내고 직접 나누어 주고 한 것만도 150kg이 넘어. 일부러 전라도에서 고구마 모종을 구입했는데 다행히 맛도 아주 좋아. 며칠 전 우리 고구마를 드신 할머니로부터 입소문이 나서, 씨 고구마를 얻으러 오시는 할머니들도 생겼을 정도야. 모두 넉넉하게 나누어 드리고 있어. 외지에서 온 우리가 텃세 같은 것은 전혀 모르고 살았잖아. 엄마를 친딸자식처럼 아껴 주시는 분들이라 뭐를 드려도 조금도 아깝지 않다.

 

엄마 평생 이렇게 많은 고구마를 한 군데 모아놓은 것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어. 우리 손으로 힘들여 지은 고구마를 나누어 먹는 기쁨과 보람이 지난 몇 달간의 힘든 노동을 보상해 주는 듯하구나. 하지만 몸에 무리가 되었던지 몸살과 피로가 겹쳐 음식도 제대로 못 먹을 정도로 많이 힘들구나. 이렇게 많이 짓는 고구마 농사는 올해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었으면 한다. 엄마 아빠가 땀 흘려 지은 이렇게 달고 맛있는 고구마가, 널린 게 고구마일 정도로 이렇게 많은데 정작 너는 한 개도 먹어 보질 못하는구나. 이런 것이 인생인가.

 

너를 군대에 보내고 맞는 첫 겨울이 엄마에게는 더욱 추울 것만 같구나. 길고 긴 겨울 밤, 너를 추운 전방에 보내고 엄마는 따뜻한 방에서 제대로 잠을 청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부디 몸 건강에 유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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