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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문의 아들에게

'해피' 가출 사건

by 책벌레아마따 2014. 12. 14.

                                 ' 해피' 가출 사건

                                                           20141214

 

 어젯밤에 해피가 집을 뛰쳐나갔어.

 

 몇 년을 함께 살아도 전혀 그런 일이 없었는데, 올해 들어서 네 번째 이런 일이 생기는구나. 저녁을 먹는데 통 밥맛도 없고, 밖에 나가 골목을 서성거려 봐도 그림자도 보이지 않고, 밤이 되어도 언제 들어올지 몰라 대문을 잠글 수도 없고. 날씨는 또 얼마나 추운지.

 

 다행히 서너 시간 후 돌아오기는 했지만, 그 시간 동안 가슴을 많이 졸였다. 어떻게 그 단단한 목줄을 끊었을까. 짧은 목줄보다 긴 목줄을 해 주면 행동반경이 넓어져 아무래도 편할 것 같아 긴 목줄을 해 준 것인데.

 

 사실 얼마 전에는 정말 깜짝 놀랄 일이 벌어졌었다. 해피가 옆집 마당에 있다는 전화가 아침 일찍 걸려온 거야. 아무리 줄이 끊어졌다 하더라도 대문이 잠겨 있는데,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지. 밖에 나가 살펴보니 정말 목줄이 끊어진 채 돌아다니는 거야.

 

 길고양이 한두 마리가 늘 우리 집 담장에 올라앉아 마당을 내려다보는데, 사람이 나타나도 쉽사리 도망가질 않아. 그런데 해피가 고양이를 매우 싫어해. 아마도 밤에 고양이를 쫓으려다가 담을 뛰어넘은 거라 추측이 되는구나.

 

 그런데 바로 그게 미스터리다. 어떻게 담을 넘었는가 말이야. 도움닫기를 할 공간이 부족한 구조라서, 제자리 뛰어넘기를 하지 않는다면 도저히 담을 넘을 수가 없다고 판단되는데 말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고양이를 쫓아내야 한다는 집념이 불가능을 가능으로 이끈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줄을 교체하고 한층 경계를 강화했음에도 다시 줄을 끊고 집을 뛰쳐나가는 사태가 발생하니,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구나. 사람을 물거나 하지는 않지만, 만에 하나 개를 보고 누군가 놀라 뒤로 넘어지거나 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잖니.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해야 좋은지 심각하게 고민을 해 봐야 할 듯하다.

 

 개를 개답지 않게 대하는 엄마의 태도가 문제일까. 비오는 날 사료를 줄 때 엄마는 비를 맞으면서도 해피에게는 우산을 씌워 주고, 먹을 것을 줄 때도 던져주는 일은 없어. 우리가 숟가락을 담그고 먹던 음식 찌꺼기를 주지도 않거든. 너무 견격(犬格)을 존중해 준 것일까.

 

 해피가 집을 나간 몇 시간 동안 엄마는 많은 것을 생각했다.

 

 개가 집을 나가도 이렇게 걱정이 되는데, 만약 자녀가 가출한 가정의 부모 심정은 어떨지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찢어질 듯하구나. 그리고 너는 우리에게 고마운 자녀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너를 반듯한 인간으로 키우기 위해 하늘에 부끄럽지 않게 엄마도 최선을 다했지만, 네가 스스로 잘 커 준 것도 사실이다.

 

 너를 키우며 군밤 한 대조차 때린 기억이 없을 만큼, 어떠한 경우에도 너를 인격적으로 대하겠다는 남다른 교육적 원칙과 소신을 끝까지 지킨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 대신 네가 터무니없이 떼를 쓰면 엄마가 무척 단호했을 거다. 떼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 주기 위해 일부러 그랬던 거야.

 

 사실 엄마는 너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어. 그저 바르고 선하게 살아가는(바르고 고운 말을 하고, 바른 생각을 하고, 바른 행동을 하는) 나를 보여 주는 것이 어미 된 도리이자 교육의 기본이 아닐까  생각했을 뿐이다.

 

 그런데 네가 이렇게 잘 자란 것을 보니, 엄마가 잘 살아온 게 맞구나빈첸시오야, 정말 고맙다.

 

 몇 시간 엄마 애를 태운 해피가 괘씸하지만, 한편 이렇게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들어 주었으니 해피에게도 고마워해야겠지.

 그래, 알아. 그래서 해피가 들어오자마자 수육 조금 남아 있던 걸 주었어. 성서에 나오는, ‘돌아온 탕자를 두 팔 벌려 환영한 아버지의 심정으로 말이야.

 

 며칠 간 전국이 꽁꽁 얼어붙을 듯하다. 부디 건강에 주의를 기울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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