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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문의 아들에게

냉장고를 새로 들였다

by 책벌레아마따 2015. 2. 17.

                                     냉장고를 새로 들였다

                                                                        2015년 2월 17일

 

 그제 새 냉장고를 들였다는 소식을 전한다. 명절이 다가오니 주문이 밀려 일요일인데도 배송작업을 한다는구나. 기사 두 명이 냉장고를 설치하는 사이 부리나케 간식으로 따뜻한 메밀전과 차를 준비하여 대접했더니 아주 맛있게 먹어 줘서 고마웠다.

 1996년 구입한 김치냉장고를 20년 만에 새 냉장고로 바꾼 건데, 네가 살아온 세월이랑 엇비슷하지? 900L 대형을 구입하다 보니 현관문이 좁아 그리로는 못 들어오고, 거실 창문을 뜯고 안으로 들였어. 기사가 새것을 설치하기 전에 헌 냉장고를 수거해 간다며 들어내는 것을 엄마는 일부러 보질 않았어. 오랫동안 사용하던 물건이라 그런지 많이 서운하더구나. 20년을 우리와 동고동락 하던 물건이라 떠나보내기가 퍽 아쉬웠어. 손때 묻은 물건을 보면 왠지 그 물건에도 마음이 담겨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새것도 좋지만 낡은 것을 아끼고 고쳐 쓰고 리폼해서 다시 사용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 아니겠니. 물론 이런 충고는 너에게만은 예외다. 너는 모든 물건을 너무 아끼고 깔끔하게 사용하여 외려 걱정이니까. 너처럼 소비를 너무 하지 않아도 내수시장이 침체되어 경제가 활성화되지 않으므로, 소비가 때로는 미덕일 수도 있어. 여하튼 매사 뚜렷한 의식과 주관을 가지고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조화롭고 현명하게 처신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국내에서는 1964년에 금성냉장고가 처음으로 출시되었고, 1974년에는 삼성냉장고가 첫 선을 보였다네. 엄마가 어렸을 때 처음으로 집에 냉장고를 들여놓은 때는 1970년대 후반으로 기억한다. 지금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이 문도 한 짝이고 덩치도 작은 시시한 모양이었지만 어린 마음에 무척 신기하고 좋았어. 찬바람이 나오는 냉장고에 얼굴을 디밀고 아니 몸통까지 밀어 넣고 신기해했던 것 같다.

 냉장고가 없을 때는 어땠을지 상상이 안 가지? 여름 같은 경우는 동네 얼음가게에서 얼음 한 덩어리를 아버지가 사오시면, 무명실을 꿴 이불바늘을 얼음에 꽂고 망치로 살살 두드리면 얼음이 쫙쫙 갈라져. 그러면 그 조각난 얼음으로 수박화채를 만들어 먹었어. 차고 달달한 얼음물에 수박과 얼음 조각을 둥둥 띄운 화채를 먹고 있으면 무더위는 그만 안녕, 세상 부러울 게 없었지.

 지금은 너무나 세상이 좋아졌구나. 새 냉장고가 얼마나 럭셔리한지 모르겠다. 무엇으로 저 공룡 같은 녀석의 뱃속을 다 채울지 고민 아닌 고민이네. 새 냉장고가 좋기도 하지만, 자꾸 물질의 노예가 되어 가는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드는구나. 지금 쓰고 있는 냉장고만으로도 그럭저럭 괜찮은데 말이야.

 이왕 구입했으니 잘 사용해야지. 다음번에 네가 휴가 나올 때 냉장고에 맛있는 것 많이 넣어 둘게. 다만 TV에서 냉장고 광고할 때 보는 것처럼 그렇게는 못한다. 그나저나 엄마가 블로그에 올리는 글을 한 번이라도 읽어는 봤니? 네가 아직 졸병이라 컴퓨터가 네 차례까지 오기가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지금 못 읽으면 나중에 시간 여유가 생길 때 천천히 읽어. 엄마가 네게 들려주는 많은 이야기들을.

 어제는 제법 보슬비가 내렸어. 우산을 받쳐 들고 산책을 했다. 봄이 소곤거리며 다가오는 소리가 들리더구나. ‘, , , 이렇게 말이다. 새로 산 냉장고라 당연히 깨끗하지만 그냥 사용하는 것은 아무래도 마음에 걸려, 따뜻한 물에 주방세제를 풀어 하나하나 꼼꼼이 대청소를 하다 보니 꼬박 3시간이 걸렸어. 엄마도 몹시 피곤하구나. 오늘 하루도 다치지 말고 잘 지내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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