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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문의 아들에게

너에게 바란다.

by 책벌레아마따 2015. 3. 15.

                                                          너에게 바란다.

 

                                                                                                   2015315

 

 일본 전자업계의 지각변동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소니, 파나소닉, 샤프, 산요 등 일본 굴지의 기업들이 브랜드 가치 하락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구나. 산요는 아예 중국 기업에 매각되어 역사 속으로 자취를 감추게 되었대. 한때는 전 세계 젊은이들의 로망이었던 '워크맨' 하나로 세계 1위를 주름잡던 소니, 휴대용 게임기 전문업체인 닌텐도 같은 전자업체 역시 과거의 영광과 명성이 빛바랜 지 오래다.

 

 학회에 참석 차 서울을 방문하신 길에 우리 집에도 오셨던 후지이 교수를 너도 희미하게나마 기억할 거다. 이공계에 몸담고 있는 그분 덕분에 일본 유학 중에는 도시바 같은 기업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어. 일본은 산학(기업과 대학)공동 연구가 활발하고, 기업에서는 수시로 관련 학자들에게 초청장을 보내 기업 설명도 하고 신제품을 소개하기도 하거든. 1980년대는 한국 경제가 일본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이던 때로써, 일본 경제를 선도하는 대기업의 위세는 그야말로 하늘을 찌를 듯했다. 도쿄의 최대전자상가단지인 아키하바라에 갔더니 전자제품들이 흘러넘쳐 그야말로 전자제품의 천국이었어. 한국의 주부들이 일본의 조지루시(코끼리 표) 밥솥 하나면 소원이 없겠다고 하던 때였다. 하지만 일반인들은 해외여행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설령 돈이 있다고 해도 손쉽게 일본제품을 구하기 어려웠지.

 

 그러던 전자대국 일본이 이렇게 몰락하다니 세상에 영원한 강자는 없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개발도상국에서 건너가 경제대국 일본의 최전성기를 직접 경험한 엄마로서는 만감이 교차하는구나. 여기서 엄마는 국내 기업에 경고의 메시지를 하나 전달하고 싶다. 백색가전이며 스마트폰이며 우리의 전자업계가 지금은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결코 자만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일본을 추월한 것에 자만하고 있다가는 무섭게 우리를 뒤쫓고 있는 중국에게 언제든 정상의 자리를 빼앗길 수 있어. 잠시라도 제품 개발을 소홀히 하고 시장의 변화와 흐름을 외면하면 우리도 언제든지 같은 처지에 놓일 수 있다는 이야기지. 기업이란 소리 없는 총성이 난무하는 무혈의 전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하튼 우리나라가 오늘날 국제사회에서 이 정도의 위상을 갖추게 된 것은, 24시간 불 꺼지지 않는 연구실에서 부단히 기술의 진보를 위해 구슬땀을 흘린 연구원들과 가정보다 기업 발전에 더욱 헌신했던 기업인들 덕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 있다. 물질적 가치만 추앙받는 세상에서는 인간의 삶이 피폐해질 수밖에 없다. 인문학이 쇠퇴하면 정신적 가치체계가 허물어지게 되고 따라서 인류가 바라는 진정한 미래는 보장받을 수 없을 거라 믿는다. 인류역사와 궤도를 같이 하는 순수학문의 불변의 가치가, 어떠한 경우에라도 퇴색되는 일은 없어야 하는 이유다.

 

 ‘인문학의 위기, 인문학과의 통폐합이니, ‘SKY’를 나와도 취업이 어렵다느니 요즘 말들이 많구나. 너도 군에서 제대하고 복학을 하게 되면 아마도 그런 말들을 좀 더 피부로 느끼게 될 거다. 그리고 청년들에게 유독 가혹한 시대에 약간의 회의를 가지게 될지도 모르겠구나.

 

 그러나 엄마는 조금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 한 마디로 대학이 직업훈련기관은 아니잖니. 전공 학과를 불문하고 대학 입학 직후부터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고, 학과 공부보다 취업에 유리한 스펙을 쌓는 데 매진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일생을 통해 학문을 연마하기 딱 좋은 청춘의 시기에, 열정과 의지로 충만한 배움의 길 위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학문에 깊이 몰두해 보는 것, 거기에 대학생활의 더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단 한 번이라도 어느 한 가지 분야(학업이건 일이건)에 완전히 몰입했던 뜨거운 기억이야말로, 두고두고 인생을 얼마나 풍요롭게 만들어 주는지 모른다. 너도 그런 경험과 추억을 공유할 수 있게 되기를 엄마는 진정으로 바란다. 취업? 그건 나중일이고. 설마 밥이야 굶겠니?

 

 오늘은 엄마가 두 가지 주제를 놓고 이야기했다. 첫 번째는 일본 기업의 흥망성쇠를 지켜보면서 영원한 강자는 없음을 깨달았다는 것과, 두 번째는 네가 좋아하는 길을 두려움 없이 가라는 것이다. 엄마는 네가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더라도 흔들림 없이 너를 지지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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