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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문의 아들에게

밭일

by 책벌레아마따 2015. 5. 28.

                                          밭일                     

                                                                            2015528

 

 

  잘 지내고 있는 너를 두고 한바탕 소동을 벌인 뒤로 평안한 날들이 지나고 있다. 그새 아주 여름이 되었어. 엄마는 지금 반팔을 입고 있다. 네가 있는 곳도 꽤 덥지?

 

  며칠 전 수확해 둔 마늘과 양파를 어제는 일일이 대를 잘라 햇빛에 내다널었어. 오랜 시간 단순 작업을 하고 나니 양쪽 어깨와 허리도 아프지만, 무엇보다 엄지손가락 부위가 벌겋게 달아올라 제법 통증이 느껴지는구나. 작년에 고추밭에 두세 차례 진딧물 약을 살포한 것과 화학비료 몇 번 사용한 것 빼고는, 밭을 장만한 뒤로 이제껏 단 한 번의 농약도 사용하지 않았다. 마늘과 양파도 다 그렇게 키운 녀석들이야.

 

  잡초와의 전쟁은 상상 그 이상이다. 30분만 풀을 매 주고 나도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프다. 아마 평생 육체적 노동을 하지 않은 탓에 몸의 근육이 퇴화된 게 아닌가 싶기도 해. 그런데 이곳 할머니들이 일을 하시는 걸 보면 우리는 입도 뻥긋 말아야 해. 그 힘든 일을 견뎌 내시는 것을 보면 정말 말문이 막힐 정도야. 그러니까 허리가 다들 구부러지셨지. 그런 몸으로 일을 그렇게 잘들 하시니 놀라울 뿐이야.

 

  여하튼 우리가 기른 밭작물들은 그야말로 친환경 농산물이라 자부한다. 모양은 죄다 제각각이라도 몸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전혀 께름칙하지 않으니까. 우리 손으로 키운 콩과 들깨와 고구마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이렇게 기쁠 수가 없다. 너도 이다음에 나이가 들면 꼭 밭일의 즐거움을 누리기 바란다. 슈퍼에서 포장된 것을 사들고 와서 식탁에 올리는 것과는 하늘과 땅 차이야. 구슬땀을 흘릴 때는 정말 몸이 뻐근하지만, 힘들기만 한 게 아니라니까.

 

  도시의 번잡스러움을 떠난 뒤로 더러는 그곳이 그립기도 하지만, 지금 이대로도 상당히 괜찮다. 네가 없다는 것만 제외하면 만족도는 꽤 높아.

 

  아들, 이제 군 생활도 딱 절반 왔구나. 국방부 시계가 고장 난 것은 아닌 모양이네. 부상에 각별히 유의하기 바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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