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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문의 아들에게

해프닝(happening)

by 책벌레아마따 2015. 5. 21.

                                                해프닝(happening) 

                                                         2015521

  

  어제는 정말 견디기 힘든 하루였다. 2주마다 집으로 전화를 해 주던 네게서 4주가 되도록 아무런 기별이 없으니, 지난 주말을 넘기면서부터는 기다리다 지쳐 걱정이 들기 시작했어.

 

  걱정과 불안으로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아침을 맞았다. 처음 하는 전화라 한참을 고심하던 끝에 아빠가 부대 행보관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통화가 되지 않자, 휴대전화 메시지를 남겨 두었어. 그런데 반나절이 지나는데도 회신이 없으니 애가 탔다. 오후 들어 마음이 심란한 아빠가 밭으로 올라가시고, 과연 통화가 될까 싶으면서도 나도 모르게 행보관의 전화번호를 누르는데 손끝이 자꾸만 떨리더구나.

 

 결론부터  말할 것 같으면 뜻밖에도 바로 연결이 되었고, ‘잘 지내고 있다.’는 세상에서 가장 듣고 싶었던 그 한 마디를 들었다. , 하느님! 밤에 네 전화를 받고 너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나니, 더욱 더 확실하게 모든 근심이 눈 녹듯 사라지더구나.

 

  그리고 네 이야기 중에 틈날 때마다 책을 읽으며, 예전에는 미처 몰랐던 기쁨들을 새롭게 깨닫게 되어 한 구절 한 구절이 너무도 맛있다니 다행한 일이구나. 책이건 자연이건 사람이건 도처에 스승은 널려 있기에, 학교 교육에 관계없이 얼마든지 자신의 인격을 도야할 수 있는 길은 있다. 엄마는 시골로 오면서 자연과 책을 스승으로 삼았기에, 한적한 시골에서도 많고 많은 것들을 배우고 있다.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할 때 행복하다. 강요에 의해 하는 일이나 의무감에서 하는 일로는 진정으로 행복해지기 어려워. 자발적인 선택이 중요하다. 한 번뿐인 인생, 후회 없이 살아야 한다. 이 땅에 왔을 때보다는 조금 더 진화된 모습으로 떠나야 하지 않겠니. 네 나이는 한창 인생을 고민할 나이다. 어느 정도의 내공에 겸손함을 갖추었으니 앞으로 성실과 근면이 더해진다면, 너는 하늘을 우러러 과히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가게 될 거라 믿는다.

 

  엄마와 전화 통화 끝난 뒤로 밤 1시부터 오늘 오전 10시까지 야간 근무를 서야 한다니,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시간도 너는 근무 중이겠구나. 정말 그 말을 들으니 불철주야 나라를 지키는 국군이라는 말이 실감나는구나. 12시부터 잠을 자게 될 거라니, 어휴! 나이가 들어가면 하룻밤을 새도 몸이 휘청거리는데, 밥 먹듯 야간 근무를 서야 하는 너희들을 생각하니 울컥해진다. 너와 모든 장병들 덕분에 후방의 우리가 두 다리를 뻗고 잠을 잘 수 있다.

 

  아무튼 요 며칠 얼마나 엄마와 아빠의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모른다. 이번 일은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나 천만다행이지만, 다시 이런 일이 있을 때는 아빠가 부대로 달려간다고 하셨어. 앞으로 2주에 단 5분이라도 네 목소리를 들려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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