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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문의 아들에게

비 오는 날, 들판에 서서

by 책벌레아마따 2015. 6. 5.

                                     비 오는 날, 들판에 서서

                                                 201565

 

 비가 내리거나 바람이 심하게 불거나 몹시 추운 날에는 산책하는 게 망설여질 때가 있어. 오늘 아침에도 비가 내리니까 순간적으로, ‘그만 둘까하는 게으른 마음이 올라오더라고. 하지만 유혹을 물리치고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한 걸음만 내딛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그런 마음은 사라지고 만다. 정말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자신을 이기는 일인 것 같다. 그러니까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 진정한 승자이겠지.

 

 크고 작은 숱한 유혹과 싸우면서, 책 읽고 일기 쓰고 글 쓰고 그림 그리고, 또한 엄마가 관심 있는 분야의 스크랩을 하면서 살아왔다. 최소한 30년 이상 지속적으로 게으름 피우지 않고 해 온 일들이니, 마니아(mania)라 불러도 괜찮겠지? 산책을 한 지는 20년이 조금 넘었다. 일상에서 벌어지는 그런 소소한 일들이 쌓여 엄마의 인생이 된 것 같구나.

 

 서울에 있건 시골에 있건 지루할 새는 없어. 굳이 어디를 찾아다니면서 신나게 먹고 마시며 놀지 않아도, 혼자서도 기쁘고 감동적인 순간이 많거든. 예전에 국제적(?)으로 놀고, 역동적인 삶을 살던 때와는 또 다른 행복이다. 시골 생활은 자칫하면 무질서로 이어지기 쉽겠더라. 누가 간섭하는 사람이 있나 잔소리하는 사람이 있나. 하루 종일 방에서 뒹굴며 텔레비전을 본다고 흉 볼 사람이 있나. 자영업도 마찬가지일 것 같구나.

 

 그러니 자신을 철저하게 관리해야 해. 지난번에는 엄마가 초등학생처럼 일과표를 적어 책상 위에 올려놓은 것을 보고 아빠가 놀리는 거야. 사람마다 성격도 다르고 사고방식도 다르니, 각자의 주관대로 살아가는 게 맞을 거야. 엄마는 자신과의 자그마한 약속이라도 소홀히 하지 않으려는, 뭐랄까 자신에게 좀 엄격하기 때문에, 시골 생활이라고 해서 방종으로 흐르지는 않는 것 같다. 일주일에 하루 이틀은 뒹굴뒹굴해도 괜찮겠지, . 365일 정신 차리고 살면 그것도 스트레스잖아.

 

 마당으로 나가니 벌써 주인 인기척을 듣고 해피가 집에서 나와 비를 맞고 꼬리를 흔들고 있더구나. 그렇게 애교를 부리지 않아도 다 이해하는데, 주인에게 밥 한 그릇 얻어먹겠다고 저러나 싶어 마음이 짠하다. 아니면 반려동물들의 몸속 DNA에는 그렇게 각인이 되어 있는지. ‘주인에게 미움 받으면 살아가지 못한다고

 

 선뜻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한 5분을 비에 젖은 털을 쓰다듬어 주고 머리 마사지를 해 주었더니 자꾸 혀를 날름거리며 나한테 침을 바르네. 머리 마사지가 뭐냐고? 해피 머리를 반쯤 세운 다섯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 주는 거야. 시원하고 좋은지 머리를 누르기 시작하면, 아주 눈을 감고 뭔가를 느끼는 것 같아. , 어이가 없어서. 어제는 해피 사료 인터넷으로 주문한 게 왔어. 여름이라 체력 소모가 많을 것 같아서 좀 비싼 거로 주문했어. 비싸다고 좋은 것은 아니지만, 여하튼 조단백질 함유량이 높고 사료 회사가 믿을 만한 곳. 털옷을 입고 얼마나 더울까, 말을 못해 그렇지.

 

 논둑길을 걷는데, 모내기는 거의 다 끝났고, 여린 초록 잎들이 하늘하늘 춤추는 것을 보면서 가슴이 뭉클했다. 저 놈들이 자라 사람에게 밥이 되잖니. 그런데 오늘 새로운 것을 하나 발견했네. 물이 담긴 논에 빗방울이 닿는 순간, 수많은 동심원들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거야. 그 놀라운 자연의 아름다움을 나 혼자 보고 느끼는 것은 아닌지. 혼자 보기 아까운 비 오는 날의 풍경이구나.

 

 엄마의 우려가 현실이 되었구나. 공군 원사가 메르스에 감염되었다는 뉴스를 보았어. 제발 그런 일이 없기를 바랐건만.

 

  하느님의 자비를 간구하는 아침이다. 면역력이 떨어지지 않도록 차가운 음식이나 음료를 자주 입에 대지 말고, 덥다고 옷 훌렁훌렁 벗지 말고. 아무리 더운 여름이라도 집에서도 옷매무새를 함부로 하는 너는 아니다만. 혹독한 훈련이 점점 코앞에 다가오는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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