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의 미학
2015년 6월 1일
행복은 물질적 풍요와 비례할 거라 믿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유용한 수단 가운데 하나가 물질임에는 틀림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행복을 무한정으로 제공하지는 못한다. 정신적 가치를 외면하고 물질 위주의 편향적인 시각에 함몰된 삶 속에는 행복이 오래 깃들기 어렵다.
하느님의 외아들 나사렛 예수님이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시고 스스로 낮은 곳으로 임하시어, 병들고 외롭고 가난한 자들과 일생을 함께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 카필라 왕국의 왕자로 태어나신 부처님이 풍족하고 화려한 왕궁을 떠나 고행의 길에 오르신 데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일까.
성서 루카복음 21장 1-4절은 가난한 과부의 헌금에 관한 이야기다.
- 예수님께서 눈을 들어 헌금함에 예물을 넣는 부자들을 보고 계셨다. 그러다가 어떤 빈곤한 과부가 렙톤 두 닢을 거기에 넣는 것을 보시고 이르셨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을 예물로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지고 있던 생활비를 다 넣었기 때문이다.”-
이와 유사한 ‘빈자일등(貧者一燈)’이란 이야기가 불교 경전인 현우경(賢愚經) 제3권 빈녀난타품(貧女難陀品)에 나와 있다. 부처님이 사밧띠(舍衛城)에 머무르실 때 ‘난타’라는 한 가난한 여인이 있었다. 사람들이 부처님께 기꺼이 공양을 올리는 것을 보면서, 형편이 어려운 그녀는 힘들게 구걸에 나섰다. 그렇게 마련한 1전의 돈으로 기름을 사서 등불을 밝혔다. 밤이 점점 깊어지자 국왕이 공양한 수많은 등불마저 다 꺼지고 말았지만, 난타가 밝힌 작은 등불 하나만은 밤이 지나 새벽이 되도록 꺼지지 않고 홀로 환하게 타올랐다. 그 뒤 부처님은 난타의 갸륵한 정성을 아시고 비구니로 받아들이셨다.
인류의 위대한 두 스승이 들려주는 메시지가 시사하고 있는 바는 무엇인가. 조물주는 결코 피조물의 기도를 전부 들어 허락하시지 않는다. 인간의 욕망이란 끊임없이 무언가를 갈망함과 동시에, 고장 난 자동차 브레이크처럼 제어가 어려운 것임을 훤히 아시기 때문일지 모른다. 쾌락의 늪에 빠진 그 찰나적인 시간조차도 새로운 것을 욕망하는 인간이기에, 행복의 유통기간이란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만약 절박한 순간의 간절한 기도가 이루어진다면 더 이상은 바랄 게 없어야 마땅하거늘, 또 다른 소원수리(訴願受理)를 신청할 확률은 백 퍼센트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게 인간이란 존재다.
하지만 이제 그 굴레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 가질 수 없는 것에 절망하고 갖지 못한 것에 좌절하는 대신, 이미 가진 것에 집중하고 또 감사해야 한다. 부자가 되는 것보다 가난해도 만족을 아는 편이 행복해질 확률은 더 높다. 눈만 뜨고 나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근심하지 말고, 걱정에 휩쓸리지 않는 인생을 살아야 한다.
기업의 손익계산서란 일정 기간 발생한 총비용과 총수익을 산출하여 최종적인 기업의 이윤을 나타내는 표다. 마찬가지로 인생의 손익계산서에도 늘 손익이 교차한다. 잃는 게 있으면 얻는 게 있고,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다. 역설적으로 말해 무언가를 얻으려면 무언가를 희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인생백년에 고락(苦樂)이 상반이다.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고, 장점이 있으면 단점이 있고, 풍요가 있으면 빈곤이 있고, 삶이 있으면 죽음이 있게 마련이다. 넘치면 넘치는 대로,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있는 그대로의 상황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은 결핍 속에서 성장하고 고통을 통해 성숙한다. 비록 가난에서 벗어날 수는 없더라도 행복을 일굴 수는 있다. 가난해도 화목한 가정은 불행하지 않다. 최근 발표된 보고서도 이런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 청소년들에게 있어 자살충동을 일으키는 가장 큰 요인은 부모와의 갈등 때문이지 가정형편이나 성적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궁핍은 영혼과 정신을 낳고, 불행은 위대한 인물을 낳는다고 한다. 부족하고 힘든 과정 속에서 삶의 진정한 의미를 깨우쳐 가는 것이 행복은 아닐까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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