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지사지’의 교훈
2015년 8월 23일
흔히 역지사지라는 말을 접하지만 그 뜻을 제대로 알고 또 실천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매사 역지사지할 수만 있다면 부아를 돋우는 상대방에게 측은지심을 품거나, 뺨을 때리는 이에게 반대편 뺨을 돌려 대는 것도 가능할지 모른다. ‘역지사지 정신’만 잘 활용하면 인간관계에서 파생되는 많은 갈등을 스스로 극복하고, 누구라도 관용과 배려의 달인이 될 수 있다.
역지사지는 사람과 사람뿐 아니라 사람과 하느님의 관계에도 적용된다. 우선 나 혼자만의 하느님이 아니심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나막신 장수와 우산 장수, 두 아들을 둔 어머니 이야기를 다들 알고 있다. 비가 오나 해가 뜨나 어머니의 근심은 마를 새가 없다. 하느님의 딜레마 또한, 당신의 자녀들이 경쟁적으로 바치는 기도의 홍수 속에서 이해가 충돌하는 부분들의 원만한 조율에 있지 않을까.
보편적으로 어머니들의 기도라 하면, 자녀를 위한 기도 그것도 원하는 대학이나 직장에 붙게 해 달라는 기도일 듯싶다. 그런데 입학이나 채용 정원이 한정된 마당에, 내 자녀가 합격하면 다른 집 자녀는 낙방의 쓴잔을 마실 수밖에 없다. 이런 경우 하느님께서는 어느 자녀의 손을 들어주어야 좋을지 난감하시지 않겠는가. 진정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다면, 당신을 곤혹스럽게 하는 기도는 삼가는 것이 마땅하다.
방법은 단 하나, 끝없이 바라고 구하려는 욕망의 사슬을 끊어야 한다. 그러려면 오로지 지금 이 순간(only one moment!)에 집중해야 한다. 그리고 청원기도보다 감사기도의 비중을 점차 늘려 나가다 보면, 비싼 옷과 명품 핸드백과 멋진 자동차를 봐도 시큰둥해질 날이 반드시 온다. 살아 숨 쉬는 것보다 위대한 기적은 없다는 것도 덤으로 알게 될 것이다. 기다려도 응답이 없으면 기도가 그릇된 줄을 깨달아야지, 주님마저 자신을 외면했다며 몽니 부릴 일은 아니다.
한때는 시대를 리드했으면 했지 뒤처지는 축은 아니었는데, 몸에 한번 병이 들고는 당최 도전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러니 제발 건강하게만 해 주십사 떼 부린 적도 있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 보니, 언제든 부르시면 먼 길 떠날 나그네가 웬 허망한 고집인가 싶어 마음을 싹 바꿨다. 너덜너덜해지는 육신이야 어쩔 수 없더라도 영혼만은 비루해지고 싶지 않다.
지금은 있는 그대로의 순간순간이 너무도 소중하고, 내 곁에 사랑하는 가족이 있다는 것만으로 더 이상의 축복은 없다.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나의 속사람을 여물게 하시려는 하느님의 깊은 사랑을 깨치고 났더니, 아픈들 어떠하며 굶주린들 어떠하며 설령 지금 떠난들 어떠하리.
'신앙에 관한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연의 향기 사람의 향기 (0) | 2016.07.31 |
---|---|
내 잔이 넘치나이다! (0) | 2016.01.05 |
결핍의 미학 (0) | 2015.06.05 |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님을 추억하며 (0) | 2015.02.11 |
고난의 역설 (0) | 2014.12.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