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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문의 아들에게

네게 덥다고 말하기가 미안한 여름

by 책벌레아마따 2015. 7. 28.

                 네게 덥다고 말하기가 미안한 여름

                                                    2015728

 

 연말에 발간될 예정인 문인회 책자에 실릴 글 가운데, 우선적으로 이달 말까지 보내야 하는 글을 오늘 완성하고 이제야 한시름 놓겠구나. 그 때문에 한동안 네게 편지를 쓰지 못했어.

 

 여름은 여름이다. 그렇지? 올 들어 처음으로 아빠가 에어컨을 가동했어. 시원하긴 확실히 시원하구먼. 그런데 엄마는 너도 알다시피 이런 게 익숙하지가 않다. 자연에 순응하는 삶을 스스로 선택한 때문일 거야.

 

 이 에어컨을 설치하고 5,6년은 된 것 같은데 엄마 손으로 작동시킨 건 두세 번이나 될까. 아마 너는 엄마가 선풍기를 트는 것조차 본 기억이 거의 없을 거야. 지금까지 나 혼자 있을 때는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하고 더우면 견디고 TV 대신 음악을 듣고, 그렇게 아날로그 식의 삶을 살아왔다. 예전에 삐삐라는 호출기가 유행한 적도 있고, 요즘 세상에는 초등학생이나 나이 드신 분들도 대부분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는 듯하지만, 엄마는 살면서 이런 물건들을 한 번도 가져 본 적이 없어.

 

 문명의 이기를 잘 활용하면서 편리하고 안락한 삶을 사는 것도 좋은 일이겠지. 하지만 엄마는 솔직히 말해 편리함을 추구하는 삶이 그렇게 좋지도 부럽지도 않다. 더운 물이 나오는 샤워 시설만 갖추고 깨끗하기만 하면 낡고 볼품없는 집이라도 괜찮아. 값싸더라도 깨끗한 옷이면 족하다. 그 대신 먹는 것은 아직도 많이 까다롭다.

 

 어려서부터 입이 원래 짧기도 하고 미식가이기도 하고. 아무 음식이나 뱃속으로 집어넣기가 좀 그래. 조금 먹는 대신 신선하고 질이 좋은 것을 좀 따지는 편이야. 좋은 식재료를 따져 구입하더라도 우리가 외식을 일 년에 한 번도 하질 않으니 외식비용으로 충분히 충당이 된다. 그 대신 음식을 만들어 대기 위해 그동안 엄마가 힘들었을까. 한 번쯤은 생각해 주겠니. 명품 옷이나 명품 핸드백을 찾는 사람도 있지만 엄마는 그런 것들에 거의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부럽기는커녕 외려 부담스럽다.

 

 건강을 잃고 나서 세상을 보는 시각이 달라진 점도 있을 거야. 삶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 엄마가 혹시 오늘 더위 먹은 건 아닌지 모르겠다. 생전 하지 않던 소리를 다 하는구나.

 

 어제는 밤에도 기온이 별로 떨어지지 않아서 온도계를 보니 30도야. 열대야로 인해 계속 잠을 설치게 되네. 그런데 덥다는 말을 하는 것도 너에게만은(너와 국군 장병들) 미안하구나. 집처럼 자유롭게 샤워를 할 수도 없을 텐데 이 무더운 여름을 너는 어떻게 보내고 있니. 너는 겨울을 좋아하는데.

 

 그래도 다음 달에 휴가를 나온다고 하니 좋구나. 엄마가 만들어 줄 맛있는 음식 먹는 상상을 하면서 무더운 여름을 잘 보내거라. 배탈 조심하고. 오늘도 불침번 서야 하는 거니. 무슨 불침번을 매일 서다시피 하니? 엄마가 잠을 못 잔다. 더워서 못 자고 네 생각하느라 못 자고. 어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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