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향기 사람의 향기
2016년 7월 31 일
작년 이맘때 이웃 마을 골목 안길로 들어서자 웬 향내가 진동했다. 진원지를 수배한 끝에 발길이 멈춘 곳은 나지막한 울타리가 둘러쳐진 어느 집 앞. 그곳 조붓한 마당에 순백의 백합꽃이 수줍게 피어 있었다. 단아하면서도 기품 가득한 자태에서 발산되는 고혹적인 향기에 문득 천상이 떠올랐다. 사람이 천하에 없는 향수를 만든다한들 자연의 섭리에 따라 돋아난 한 떨기 꽃향기를 이길쏘냐. 솔로몬 임금의 모든 영광이 들에 핀 한 송이 백합만 못하다는 성서 말씀 그대로인 듯했다.(마태 6:29)
천연 향료는 장미·백합·라벤더·히아신스·오렌지·레몬·키위·후추·육두구 등의 꽃이나 열매, 사향노루·사향고양이·사향쥐 같은 동물의 분비물에서 추출한다. 여기에 물리적·화학적 과정을 거쳐 생성된 합성 향료를 알맞은 비율로 배합하고 알코올에 용해시킨 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향수다. 여하튼 장미 가시에 찔려 사망했다는 독일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에게는 면구스럽지만, 나는 뭇 향기 중 유독 그 가시 많은 장미향이 좋다. 아쉽게도 장미 생잎 1톤에서 얻는 장미 오일은 고작 30그램이다.
세계에서 가장 귀한 꽃과 향료는 신비한 향기를 머금은 보랏빛 사프란이다. 인도와 페르시아에서 재배되기 시작해 현재는 이란이 전 세계 교역량의 9할을 차지한다. 기후적으로 사막 지역과 잘 맞아 사막의 꽃이라고도 불린다. 꽃송이 당 한 개의 암술에서 세 가닥의 붉은 암술대가 갈라져 나온다. 사프란 향기를 추출하는 방법은 가을 개화시기에 꽃을 채취한 후 암술대만 따로 모아 쟁반에 펼쳐 숯불에 신속히 말린다. 노란 사프란 분말 100그램을 얻으려면 약 만 오천 송이의 꽃에서 딴 오만 개의 암술대가 필요하다. 전 과정 수작업을 거쳐 얻어지는 귀한 향료인 만큼 고가에 거래된다. 그 맛은 달면서 약간 쓰며 물에 잘 녹아 쌀이나 감자 요리·소스·수프·빵 같은 음식은 물론 약품·염료·향신료·화장품 제조에도 널리 쓰인다.
꽃에 향기가 있다면 사람에도 향기가 있다. 그것은 인격이다. 인격은 사상의 뿌리로써 결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으며 자신을 갈고 닦는 과정 속에서 서서히 완성된다. 사람이 지닌 올곧은 인격은 겸손하고 깨끗한 마음과 곱고 바른 언행을 통해 겉으로 고스란히 투영된다. 포어지실(鮑漁之室)이라 함은 생선 놓인 방에 있으면 생선 비린내가 몸에 밴다는 뜻이다. 또한 지란지실(芝蘭之室)이라 하여 난초 놓인 방에서는 자연스레 난초 향기가 몸에 배게 되어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주님의 자녀로서 맞갖은 삶을 살고 있다면 우리에게서 하늘의 향기가 발산될 것이다. 아니, 한 순간의 미소와 몸짓에조차 부지런히 하늘의 향기를 실어 보내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주님의 자녀임을 스스로 증명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