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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관한 글

직업에 대한 고찰

by 책벌레아마따 2015. 10. 1.

                                     직업에 대한 고찰

 

                                                                       2015년 9월 23일

 

 작년 말 기준 한국직업사전에는 별의별 기상천외한 직업을 포함한 11,440개의 직업이 올라 있다. 유독 몇몇 특정 직업을 선호하는 사회적 특성 때문인지 2,30개 나열도 쉽지 않은 일반인들로서는 가히 어마어마한 직업의 세계다.

 

 그간 시대 조류에 떠밀려 수많은 직업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대장장이, 지게꾼, 신문팔이, 엿장수, 고물장수, 얼음장수, 아이스케키 장수, 두부장수, 땜장이, 칼갈이, 등짐장수 같은 서민밀착형 직업은 자취를 감춘 지 이미 오래다. 이후 아날로그 시대에서 디지털시대로 산업구조가 급격히 개편되면서 직업 간 세대교체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대표적인 예로 전자업계의 지각변동을 들 수 있다.

 

 한국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본 전자업계의 흥망과 부침은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를 던진다. 세계경제대국의 위용을 뽐내던 시기, 도쿄 전자상가 아키하바라에는 몰려드는 인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그러나 영원할 것 같던 난공불락의 전자대국 일본이 무릎을 꿇고 말았다. 산요는 이미 중국 기업에 매각되었고, 지구촌 젊은이들의 로망인 '워크맨으로 한때 세계전자시장을 석권했던 소니, 휴대용 게임기 전문회사인 닌텐도, 파나소닉, 샤프 등 일본 굴지의 전자업체들이 브랜드 가치 하락으로 경영난에 처한 것이다. 다만 최근 들어 반격에 나서기 시작했다는 외신 보도가 있으므로 사태 추이를 지켜볼 일이다. 한국이 지금은 백색가전이나 스마트폰 시장에서 우월적 지위를 누리지만, 잠시라도 제품 개발에 소홀하거나 시장의 변화와 흐름을 외면한다면 바로 정상의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 그와 동시에 수많은 일자리가 공중분해 될 수밖에 없다. 경제 시장이란 소리 없는 총성이 난무하는 무혈의 전장이다.

 

 사라지는 직업만 있는 게 아니라 새로운 직업들이 속속 등장한다. IT강국답게 컴퓨터보안전문가· 시스템분석가· 3D프린터개발자와 같은 첨단산업과 관련된 일자리가 새롭게 창출되고 있다. 입학사정관제 시행에 따른 입학사정관이나, 전문 인력을 기업에 소개하는 헤드헌터, 반려동물의 급증에 발맞추어 애완동물 장의사나 견공 옷 디자이너도 새 직업군에 합류했다. 무인항공기 드론 시장은 아직 활성화 단계는 아니지만, 드론과 피자배달 서비스를 접목시킨 사업을 구상 중인 기업도 있다. 이제 드론에게 피자배달 일자리를 양보할 날도 머지않았다. 기술의 혁신과 진보를 마냥 반길 수만은 없는 이유다.

 

 외국의 이색 직업으로는 예전 서울의 지하철에서도 볼 수 있었던 풍경처럼, 혼잡한 출퇴근 시간에 지하철 안으로 사람을 밀어 넣는 일본판 푸시맨인 오시야가 있다. 상갓집에서 곡을 해 주는 대만의 전문 문상객’· 인도의 귀 청소 전문가’· 들판에 날아드는 새를 쫓아내는 영국의 인간 새 몰이꾼도 있다. 한국의 이색 직업에는 배달원· 대리운전기사· 고속도로 뻥튀기 장수 등이 꼽힌다.

 

 정치인들이 선거철만 되면 즐겨 변신하는 직업이 있다. 이른 새벽 환경미화원 유니폼을 입고 일일 체험에 나선 모습이 그것이다. 사회 통념상 가장 힘들고 고되다는 직업인의 애환을 몸소 체험해 보려는 순수한 동기에서 비롯되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만의 하나 표를 겨냥하여 유권자들에게 서민의 편이라는 이미지를 부각시키려는 일종의 퍼포먼스라고 한다면, 그것은 유권자에 대한 모독인 동시에 직업에 대한 모독이 아닐 수 없다.

 

 직업의 정의는 개인이 사회에서 생활을 영위하고 수입을 얻을 목적으로 한 가지 일에 종사하는 지속적인 사회 활동이다. 일을 통해 자아실현의 목표도 달성하고 생계까지 보장받을 수 있다면 일거양득이겠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어찌 되었건 직업에 따라 맡은 업무와 역할은 달라도 직업에 귀천은 있을 수 없다. 직업에 대한 인식이 바뀐다면 직업 간의 차별도 상당 부분 해소되리라 믿는다.

 

 그리고 여기, 직업사전에는 없지만 과거에도 존재했고 현재에도 존재하며 미래에도 결코 사라질 수 없는 직업이 있다. 일 년 내내 휴무일도 없는 무임금 근로자이기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3D업종의 선두 격인 직업, 바로 어머니. ‘어머니는 하루 24시간 가족의 건강과 안녕을 책임지는 가정의 전속 해결사다. 보육사· 생활지도사· 조리사· 청소원· 운전기사· 간병인· 과외 교사· 세탁부· 비서 등 산더미 같은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해도 해도 표 안 나는 집안일에 매달리다 보면 몸이 고장 나도 정작 본인은 하루 병가 얻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저 혼자 큰 줄로 착각하는 자녀에게서 받는 상처까지 감내해야 하는 감정 근로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묘한 매력과 보람 때문에 선뜻 사직서를 쓸 수 없는 직업, 아낌없이 다 주고도 못다 준 사랑만을 기억하게 하는 세상에서 가장 미스터리한 직업, 우리는 그 직업을 어머니라 쓰고 신의 대리인이라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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