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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에 관한 글

종교와 영성

by 책벌레아마따 2016. 12. 15.


                                                                 종교와 영성

 

                                                                                                                                    2016년 12월


  종교는 여하한 경우라도 강제성이 허용될 수 없는 매우 사적인 영역이다. 종교의 자유를 보장해야 할 당위성이 여기에 있다.

 

 종교적 신념과 의지는 죽음에 대한 공포마저 떨치게 하는 위력을 발휘한다. 최근 성전(聖戰)이라는 명분 아래 순교자를 자처하며 자폭테러를 일삼는, 수니파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IS가 이를 여실히 증명한다. 배교하면 살려 주겠노라는 회유에도 불구하고 순교로써 신앙을 전파한 조선시대의 선조들 역시 강한 종교적 신념의 소유자였다.

 

 그런데 문제는 인류 공동체에 해악을 끼치는 그릇된 종교적 신념이. 역사적 사건을 조명해 보더라도 중세시대의 마녀사냥을 비롯해 종교의 이름으로 자행된 위선적 행위에 희생양이 속출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의 선행에 관한 일화를 들려주신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형식에만 얽매인 빈 쭉정이 종교인이 아닌, 참 신앙인이 되라는 메시지일지도 모른다. 극단적 율법주의자인 바리사이파, 부와 권력을 사랑한 사두가이파, 사랑과 자비의 사마리아 여인, 이 가운데 우리는 어떤 방식의 삶을 선택할 것인가.


  세상은 넓고 종교는 많다. 세계 주요 종교에 속하는 이슬람교, 천주교, 힌두교, 불교, 기독교 외에도 숱한 종교가 존재한다. 그에 반해 종교가 표방하는 궁극적인 지향점은 대동소이하다. 기독교의 정경(正經, 구약과 신약), 불교의 경전(수트라), 이슬람교의 경전(코란) 등에는 해당 종교의 이상과 이념이 담겨 있지만 실천 여부는 신앙하는 이들의 몫이다.

 

 근래 국내외 종교의 흐름에 새로운 변화가 관찰된다. 특히 동서양을 각각 대표하는 종교인 불교와 천주교의 교차 현상에 주목할 만하다. 예를 들어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불교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센터를 중심으로 불교 수행법을 심신수련에 활용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한국에서는 종교의 벽을 뛰어넘어 불교와 천주교가 서로 이웃 종교라는 인식 아래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이밖에 향후 종교가 사라지고 영성만 남게 될 거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영성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삶을 통해 그리스도의 사랑을 깊이 체험한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속성이. 또한 하느님의 모상인 인간이 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동안, 하느님의 신비가 얼마나 넓고 높고 깊은지를 일깨워 주는 성령의 선물이다.

 

 영성은 인간의 내적 변화와 내적 성장을 촉진시키는 동력원이며 외적 변화를 이끈다. 물론 초월적 존재나 신비주의적 사건을 체험하는 것만이 영성을 얻는 유일한 길은 아닐 것이다. 형식적인 교리나 믿음의 한계를 극복하고 깨달음과 실천이 뒤따를 때 영성은 힘을 발휘할 것이다. 영성이 쇠퇴하면 결국 사람도 종교도 쇠락할 수밖에 없다.

 

 종교는 사후 영생복락을 누리기 위한 목적이 아닌, 이 땅 위에 사랑과 자비를 구현하는 수단으로써 존재해야 한다. 뗏목은 강을 건너기 위한 도구이며 강을 건너고 나면 그 역할을 다한다. 종교가 존재하는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다. 그리고 이 땅에 머물면서 강 건너의 일, 즉 죽음 이후를 앞질러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한국 종교의 쇠퇴를 막으려면 기복적인 신앙관을 쇄신하고, 종교 간 심지어 종단과 종파 간의 갈등을 해소해야 한다. 상대방의 종교나 종파를 비난하고 폄하하고 배척하는 것은 신앙인의 자세로서 적절치 않다. 자신과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편견을 가지고 배타적인 태도를 취한다면 종교 갈등의 해결책이 되기는커녕 갈등만 키울 뿐이다.


  힌두교 경전인 베다는 가슴이 곧 사원(寺院)’이라 말한다. 인류의 영원한 스승이신 그리스도와 붓다를 진정으로 믿고 따른다면 신앙인다운 향기가 내면으로부터 자연스럽게 발산될 것이다. 종교 지도자들 역시 솔선수범하여 안팎으로 실추된 교계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 혼신을 기울여야 한다.


  사랑과 자비를 이야기하지 않는 종교는 없다. 그러나 종교 간 화합은커녕 종파 간의 갈등조차 스스로 치유하지 못하는 것이 오늘날 종교가 안고 있는 딜레마다. 게다가 물질적 가치가 추앙되고 종교적 가치는 매몰되는 세속화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더 이상 종교적 순수성과 가치가 훼손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연꽃이 흙탕물에서 자란다고 해서 연꽃이 아닌 것이 아니듯, 비록 인간의 역사가 무자비와 무관용으로 점철된다 해도 인류에게 있어 사랑과 자비는 여전히 만고불변의 더없는 정신적 가치임에 틀림없다. 교회(ecclesia)의 참뜻은 부르심 받아 뽑힌 자들의 만남이다. 종교인이란 이름으로 오늘을 살고 있다면 선택된 자녀다운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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