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과 천국 사이
2013년 11월 10일
어제 있었던 일이다. 아침부터 두통이 약간 있어 ‘컨디션이 별로네’ 라는 생각은 했었다.
서너 시쯤 되었을까 거실에 앉아 있는데, 눈앞이 갑자기 팽그르르 돌더니 몸을 곧추 세울 수가 없었다. 동시에 극심한 구토증이 일면서 얼굴에 경련이 느껴졌고 손이 마비되었다. 그리고 온몸에 식은땀이 나기에 얼굴과 종아리를 만져 보니 땀이 흥건했다.
땀이 식은 후에는 몸이 싸늘하게 식고 다시 식은땀이 나기를 몇 차례 반복했다. 이 모든 것이 순식간에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일이다. 솜사탕을 불에 대면 녹아내릴 정도의 짧은 시간 같았는데, 롤러코스터를 타고 지옥으로 치닫는 느낌이었다.
여기는 시골이라 병원에 가려면 시간도 걸리고, 토요일 오후라 병원문은 이미 닫혔을 것이다. ‘일이 번잡스러워지는 것도 싫고’ 그 순간에도 이런 생각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무엇보다 손가락 하나라도 까딱했다간 몸속의 모든 것들이 밖으로 쏟아져 나올 것 같은 극도의 메스꺼움과 어지러움 때문에 꼼짝할 수가 없었다.
구급차가 와서 강제로 나를 들어다 병원에 옮겨 놓으면 모를까 나의 의지로는 도저히 몸을 주체할 수 없었다. 숨조차 쉬기가 어려워서 차라리 이대로 숨이 멈추어 버리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치밀어 올랐다. 고통을 잊으려 바닥을 떼굴떼굴 굴러 보았지만 허사였다. 참는 거라면 자신 있는 내게도 정말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었다. 급체인가, 식중독인가. 낮에 굴을 넣은 떡국을 먹은 것이 잘못 된 것인가.
미세하게라도 몸을 뒤척이면 더욱 숨이 콱 막혀 오고 구토증이 더 심해졌다. 아쉬운 대로 집에 있는 소화효소제를 물에 타 달라고 남편에게 부탁하여 마셨다. 잠시 뒤 뭔가 속에서 치밀어 올라 토했지만, 별로 나온 것이 없고 음식물도 거의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을 만큼 소화가 다 된 상태였다.
여하튼 힘겹게 조금이라도 토하고 나니 약간은 숨 쉬기가 나아져서, 엉금엉금 기어 침대로 올라간 후로는 그대로 비몽사몽간에 누워 있었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을 때 시계 바늘은 10시 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밖에는 낮부터 내리던 비가 빗줄기가 더 강해진 상태로 마치 장맛비처럼 퍼부었다. 극심하게 요동치던 어지럼증은 거의 잦아들었는데 귀에서는 여전히 굉음이 들렸다.
하지만 다시 살아났다!
반의 반나절 되는 시간에 지옥과 천국을 경험한 것 같다. 잘난 사람, 못난 사람. 잘난 인생, 못난 인생. 따지고 보면 종이 한 장 차이 아닌가. 이토록 나약하고 보잘 것 없는 육신을 가진 인간이, 뭐 그리 잘 났다고 큰 소리 치고 거드름 피우고 허세 부릴 수 있겠는가. 창을 두드리는 세찬 빗방울 소리를 들으며 눈물이 흘렀다. 다시 살려 주셔서 감사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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