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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관한 글

책과 삶

by 책벌레아마따 2013. 12. 25.

                                       책과 삶

                                                                                          2013년12월 19일

 

  아침이 속살거리며 다가오는 첫새벽인들 어떻고 어둠이 소복이 쌓여 가는 한밤중인들 어떠랴. 흔들거리는 지하철 안이나 누군가를 기다리는 카페나 한낮의 태양이 기운 한적한 오후의 공원이면 또 어떠랴. 도서관이건 찌개 국물이 끓어오르는 주방이건 책과 마주할 때의 내밀한 기쁨과 평화는 정녕 천상의 행복이다. 언제 어디서건 책과 함께 하는 풍경만으로도 나로서는 완벽한 시간과 공간이다.

 

 세상의 번잡일랑 잠시 내려놓고 책과 교감하노라면 시공을 초월한 성현들의 가르침과 삶의 지혜를 만날 수 있다. 그러기에 책은 나와 가장 친숙한 존재이면서 인생의 스승이고 동반자이다. 또한 밥은 굶어도 책은 굶지 못하는 나에게 독서란 공부이자 놀이이며 수행이다. 책에 물들어 있는 시간이야말로 나에게는 다시없는 호사라 단언할 수 있다.

 

 경제적으로 특별나게 풍족하지는 못하여도 아스라이 멀어진 유년의 기억들이 이제껏 따스하게 추억되는 것은, 꼬질꼬질 때가 묻었을지언정 늘 손에 들려 있던 한 권의 책 덕분이 아닐까 싶다. 어느새 가물가물한 청춘의 빛바랜 기억의 조각들도 대부분 도서관 언저리를 어슬렁거리고 있다.

 

 중·고교 시절부터 오늘까지 밥걱정과는 별개로 꾸준히 글을 쓸 수 있었던 것 역시 나의 청복이다. 지금도 신춘문예 공모 시즌인 연말이 다가오면 여전히 심장이 벌떡거리는 문청文靑으로 살고 있다. 책을 통해 쌓은 지식을 제자들과 나누며 기뻤고, 나처럼 책을 좋아하는 남편을 만나 부모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아들 녀석이 태어난 후에는 책 중독 일가를 이룰 수 있어 행복하였다.

 

 자녀 교육에 있어서는, 부모로부터 대물림한 독서 습관을 바탕으로 스스로 배우는 즐거움을 깨우치도록 돕는 것에 주안점을 두었다. 다만 아이가 독서의 즐거움을 몸으로 체화하기까지는 세심한 관찰과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였다. 독서 편식도 막고 성장 단계별 지적 수준도 고려하여 다양한 분야의 책을 골고루 읽히고자 노력하였다. 애초부터 사교육에 투자할 비용을 도서구입비로 돌리고 독서클럽에도 가입시켰다. 학교도서관이나 공공도서관 혹은 이동도서관 드나들기를 매일매일 실천해야 하는 즐거운 의무로 여기게 하였다. 그 결과 세상의 온갖 비밀에 목말라하던 아이는 책 속에서 만난 스승들로부터 많은 것을 듣고 배울 수 있었다.

 

 왕성한 독서력으로 세상의 책을 죄다 집어삼킬 것만 같던 초등학교 시절에는, 책과 사랑에 빠져 잠잘 시간마저 아까워하였다. 그러니 취침시간만 다가오면 아이와 실랑이를 벌이기 일쑤였다. 그날도 잠자리에 들 것을 종용하던 끝에 급기야 강제로 거실의 불을 꺼 버렸다. 그런데 엄마 눈을 피해 한참을 부스럭거리다 제 방으로 들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니, 슬쩍 감춘 한 손에 브리태니커와 노란 손전등이 들려 있는 게 아닌가. 그쯤 되면 알고도 모른 체 넘어가 줄 수밖에.

 

 아이는 유치원과 초··고를 망라하여 일체의 사교육에서 자유로웠고, 공교육으로부터는 더 자유로웠다. 오랜 시간 꾸준히 책을 가까이 하면서 지적 탐구능력이 개발되었던지, 학업은 고행이기보다는 노상 흥미로운 놀이였다. 그뿐 아니라 고3 수험 준비 기간조차 자신이 좋아하는 책에 취해 시험이나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를 날리곤 하였다. 아이를 키운 건 8할이 책이다.

 

  내 삶의 모든 사건과 기억이 이렇듯 책과 더불어 씨줄·날줄로 얽혀 있는 만큼 당연히 나만의 책 읽기 노하우가 있다. 책이 손에 들어오면 일단, ‘눈으로 읽을 책’ ‘머리로 읽을 책’ ‘마음으로 읽을 책이렇게 세 그룹으로 분류한다. 그런 뒤 내용과 깊이에 따라 책에 들일 품을 결정한다.

 

 ‘눈으로 읽을 책그룹은 시종 가벼운 기분으로 읽어 내려도 좋을 소설류들이다. ‘머리로 읽을 책그룹은 나의 지식으로 소화될 때까지 거듭 읽으며 익힌다. 이 그룹에 속하는 언어서·사상서·역사서·철학서들은 서로서로 배경 지식의 바탕이 되므로, 체계적으로 읽다 보면 지식을 축적하는 데 있어 상승효과를 얻을 수 있다. ‘마음으로 읽을 책그룹은 단순히 활자를 읽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사색을 하면서 행간의 의미를 음미한다. 각 종교의 경전을 비롯해 종교서나 신앙서 또는 동서양의 고전과 인문학 서적들 그 외에 심신과 안구의 정화를 돕는 다양한 분야의 품격 있는 서적들이 이 범주에 속한다.

 

 책 속에서 건져 올린 한 줄의 글귀가 가슴에 꽂히는 순간의 가슴떨림이야말로 책이 주는 묘미 가운데 압권이다. 책 읽기의 또 다른 즐거움을 꼽자면 장편소설 독파를 빼놓을 수 없다. 웬만한 뒷심과 지구력이 없으면 전집을 끝장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마지막 권을 마치고 책장을 덮을 때의 쾌감이 그 얼마나 짜릿한지는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나는 지혜나 지식의 부족함을 느낄 때면 책에서 진리를 찾고 정보를 구한다. 뜻하지 않은 난관에 맞닥뜨리게 된 때도 책에서 그 실마리를 찾는다. 외롭고 힘들 때도 슬퍼하거나 좌절하는 대신, 책 삼매에 빠져 한나절쯤 보내다 보면 웬만한 시름은 저절로 잊힌다. 삶의 좌표를 설정하거나 판단과 행동의 준거가 고민될 때 역시 책에서 얻은 지혜를 되새긴다.

 

 책을 통해 한 페이지씩 착실하게 앎의 지평을 넓혀 나가는 이 소박한 행복을 나는 오래토록 음미하고 싶다. 더불어 지식이나 교양을 넓히려는 독서의 일차적인 목적에 머물지 않고, 책 속 성현들의 가르침을 나를 비추는 거울삼아 꾸준히 마음을 닦아 나가고자 한다. 육신의 껍질이야 세월 따라 남루해져 가겠지만 내 영혼만은 늘 오월의 햇살처럼 눈부시기를 기도하면서. 이토록 매력적인 독서 수행에 반하여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아마도 나는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을 것이다.

 

 책 속에 길이 있는데 어찌 그 길을 가지 않겠는가. 책이 주는 지극한 즐거움을 어이하여 마다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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