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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관한 글

아로니아 영그는 계절

by 책벌레아마따 2024. 8. 21.

아로니아 영그는 계절

 

 

짙게 그늘을 드리운 나무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매미 울음소리가 계절의 감각을 새삼 일깨워 주는 듯하다. 모처럼 아스라이 멀어진 유년 시절을 추억할 여유가 생겼다. 선풍기가 저 혼자 뱅글뱅글 돌아가는 한옆에서 독서삼매에 빠져 있을 때, 빈 수박화채 그릇에 파리 몇 마리가 달라붙어 졸고 있던 그 나른한 여름날 오후의 풍경 속으로.

 

그로부터 세월을 훌쩍 건너뛴 지금, 한여름 따가운 햇살 아래 아로니아 열매가 농익어 가는 밭 한 귀퉁이에 서 있다. 묘목을 처음 심을 당시에는 아기 손가락 굵기만 했는데 어느새 성목의 자태를 드러낼 만큼 성장했다. 게다가 해마다 이맘때면 흑진주처럼 까맣고 반지르르 윤기 흐르는 열매를 아낌없이 내어주니 이보다 더 고마울 데가 없다.

 

아로니아는 초크베리라고도 불린다. 원산지는 북아메리카 동부 지역이지만 최대 생산국은 폴란드로서 전 세계 수확량의 80%를 차지한다. 항산화물질인 폴리페놀 성분이 풍부한 슈퍼 푸드로 알려지면서 한동안 국내에서도 재배농가가 급속히 늘었고 홈쇼핑사도 경쟁적으로 상품 판매에 열을 올렸다. 하지만 영원할 것 같던 아로니아 열풍은 오래지 않아 물거품처럼 사그라졌고 결국 재배농가만 울상이 되고 말았다.

 

우리도 한창 유행하던 시기에 자가 소비를 목적으로 대열에 합류했다. 그런데 두량을 잘못하여 필요 이상의 묘목을 식재한 결과 과생산이 되었다. 흔하니 귀한 줄 모르고 닭백숙에도 생과를 팍팍 넣었다. 아로니아의 영양적 가치는 이미 입증되었고 잡내 없이 육질을 부드럽게 하는 데도 효과 만점이다. 다만 거무튀튀한 닭국물이 다소 비호감이다.

 

아로니아 재배는 사실 그리 까다롭지 않다. 그러나 얼키설키 꼬인 나뭇가지를 헤집어 가며 장시간 팔과 목을 요리조리 움직여야만 하는 수확 작업은 꽤 힘이 든다. 두어 해 전에는 쐐기한테 기습공격을 당해 팔과 가슴이 새빨갛게 부풀어 오른 데다 곪기까지 해서 한 달도 넘게 고생한 적도 있다. 그 뒤 고심 끝에 그루수를 절반으로 줄이고 남은 나무들마저 과감하게 가지치기했다. 빡빡했던 가지 틈새가 시원하게 벌어지니 햇빛이 안까지 고루 스며들고 통풍도 잘 되고 무엇보다 수확 작업이 한결 수월해졌다.

 

여러 해를 겪어 보니 아로니아 농사의 성패는 적기 수확에 달렸다. 이에 필요한 것은 육안으로 성숙도를 판별하는 요령 그리고 때를 기다리는 인내심이다. 수확기 직전까지는 열매의 크기나 중량의 변화가 미미하다. 본격적인 수확기에 돌입하면 그때부터 눈에 띄게 알이 굵어진다. 열매 색깔은 연두색에서 시작해 점차 주홍색, 다홍색, 검붉은 초콜릿색을 띠다가 마지막에 검정색으로 물든다. 과피가 오글거리고 꼭지가 붉어지고 과육이 약간 말랑해진 느낌이 들면 잘 익은 것이다.

 

세상만사 모든 건 때가 있다. 그런데 머리로 아는 것과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은 다르다. 예를 들면 고기를 굽거나 전을 부칠 때 진득하니 못 기다리고 한쪽 면이 채 익기도 전에 뒤집기 바쁘다. 물을 끓일 때도 쭉 지켜본다고 더 빨리 끓을 리 만무하건만 수시로 들통 뚜껑을 여닫으며 확인해야 직성이 풀린다. 논밭에 작물이나 과수를 심어 놓고도 빨리 자라라고 성화하는데 그러다가 웃자라기라도 하면 약한 비바람에도 맥없이 쓰러질 수 있다.

 

자녀를 키우는 것도 마찬가지다. 물론 자녀 교육법에 정답은 없다. 하지만 나이대에 맞는 균형 있는 성장을 유도함은 교육의 기본임에도 자녀들을 일찌감치 속도 경쟁에 내모는 경향이 있다. 일부 부유층에서는 자녀를 남보다 빨리 높이 출세시키려는 욕심에 마구잡이식 조기 교육과 조기 유학도 불사한다. 심지어 학원가에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의대 진학반이 개설된 현실 앞에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인생은 단거리 경주가 아닌 장거리 마라톤이다. 옛 선조들은 어린 자녀의 출세를 뜻하는 소년등과를 경계했다.

 

워낙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이라 몇 분짜리 영상도 지루하다며 ‘10초짤’ ‘20초짤같은 유튜브 숏폼이 유행 중이다. 인간이야 그러건 말건 꽃과 나무는 태연자약하다. 저마다의 시기에 저마다의 속도로 꽃피우고 열매 맺으면 그뿐인 것이다. 다투거나 시샘할 것도 없다. 그래서인지 꽃을 보면 서로 짠 듯 하나같이 벙그레 웃고 있다. 이참에 혹한과 혹서, 폭풍우 속에서도 꿋꿋하게 자라 준 우리 아로니아에게 기다림의 미덕을 배워 볼까 한다.

2024. 8.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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