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지도자의 길
6월 4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우리 마을에도 선거사무소가 차려지고 예비후보 홍보용 현수막이 내걸렸다.
고향도 늙어 가고 고향을 지키는 어머니도 늙어 가는 이때, 지역 발전을 위해 한 몸 불사르겠다며 출사표를 던진 정치 지망생들을 보면서 고맙고도 안쓰럽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들이 유권자의 친구라는 확신은 아직 서지 않는다.
그들의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으로 끝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던 것이 첫째 이유이다. 그리고 지역의 언론사가 독자의 준엄한 심판 앞에서 정론직필을 고민하는 동안, 정치 입문 당시 그토록 결연한 의지를 토해내던 기성 정치인들이 과연 얼마만큼의 초심을 지켜 왔는가 하는 의구심 때문이다.
자리를 탐할 것이 아니라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면 자연스레 자리가 따라오지 않겠는가. 일개인의 욕심은 당사자의 몸과 마음을 상하게 하지만, 정치인의 사리사욕은 백성과 나라를 도탄에 빠뜨린다. 그러므로 정치인에게 요구되는 덕목은 업무 수행능력 이전에 도덕적 책임감인 경우가 많다.
유권자가 보고 싶은 것은 정치외적인 쇼가 아니다. 정책 대결이 아닌 당리당략을 앞세운 선거, 상대후보에 대한 인신공격과 비방을 일삼는 흑색선전, 금품이나 관권이 개입된 불법선거에 염증을 느낀 지 오래이다. 당선 이후에도 공정무사(公正無私)한 직무 이행보다 축재(蓄財)에 관심을 갖는 정치인들에게서 피로감을 느낀다.
정치에는 지도자의 책임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올바른 지도자를 선택하고 그들이 삿된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견제하는 일은 유권자의 몫이다. 그러려면 유권자들도 올바른 지도자를 알아보는 안목이 있어야 한다.
몇 번을 읽어도 신선한 감동으로 다가오는 ‘도덕경’에, 춘추전국 그 혼란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정치 지도자가 지녀야 할 덕목에 관한 언급이 있어 다시 한 번 곱씹어 본다. 올곧은 정치 철학이 빚어내는 건전한 통치 이념이란 한 마디로, ‘백성의 뜻을 지도자의 뜻으로 삼는 것(以百姓心爲心)’이다.
정치 후보생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조직 내에서나 지역민과의 사이에서 신뢰 관계가 성립하려면 도덕적으로 흠결이 없어야 하고 매사 솔선수범하는 태도를 지녀야 한다. 지역 발전을 위해 지역 인사나 각 단체 기관장들과의 유기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어찌 흠이 되겠는가. 다만 불필요한 접촉은 청탁이나 이권 개입의 가능성을 초래하므로 공과 사가 분명해야 한다. 의도치 않은 로비 활동이 이루어질 개연성이 있는 자리는 아예 원천 봉쇄하는 것도 방법이다.
관할 지역을 수시로 방문하여 지역 주민의 관심 분야나 애로 사항 등 현장의 소리에 귀 기울이다 보면, 정책을 입안할 때 자연스레 멋진 아이디어가 떠오를 것이다. 정책을 시행함에 있어 불요불급한 예산의 누수를 막기 위해서라도, 탁상공론에 의존하지 말고 발로 직접 현장을 누빌 것을 권고한다. 서민들 대부분은 정부 기관의 공허한 구호에는 관심이 없고, 장바구니 물가 안정이나 치안 유지 같은 민생에 관련된 소박한 바람을 가지고 있다.
조선시대 임금은 익선관(翼蟬冠)을 쓰고 나랏일을 살폈다. 매미의 두 날개를 본떠 만든 관모(冠帽)가 바로 익선관인데, 날개가 위로 향한 임금의 관모와는 달리 조정 관리들의 것은 날개를 양옆으로 늘어뜨린 형태였다. 매미 날개를 관모로 형상화시킨 데에는, 매미가 5덕(德)을 갖추었다고 여긴 때문이다.
주둥이가 선비의 갓끈을 닮았다 하여 문덕(文德), 이슬을 먹고 산다 하여 청덕(淸德), 사람이 기른 농작물을 해치지 않는다 하여 겸덕(廉德), 집을 짓지 않을 만큼 검소하다 하여 검덕(儉德), 스스로 물러날 때를 안다 하여 신덕(信德)을 갖추었다며 칭송했다. 수년간 땅 속에서 애벌레로 지낸 후 지상에 나와 고작 여름 한 철 울다 죽는 매미를 찬찬히 살펴, 바른 정치를 펼치라는 뜻이 관모 속에 담겨 있다. 시대가 바뀌었다 하여 결코 퇴색될 수 없는 심오한 의미이다.
미국의 성직자 J.F.클라크는 ‘정상배(政商輩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정치를 악용하는 무리)는 다음 선거를 생각하고, 정치가는 다음 시대를 생각한다.’고 했다. 그대들은 과연 어떤 정치가가 되고 싶은지 묻고 싶다. 2014년 4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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