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군문의 아들에게

아들 목소리

by 책벌레아마따 2014. 8. 11.

                                  아들 목소리

                                                       2014년 8월 11일

 

 토요일 아침 네게서 걸려온 수신자 요금 부담 전화(collect call)’ 한 통에 정말 기뻤다.

 

  거의 한 달 만에 듣는 네 목소리였으니까. 그런데 단 3분 통화라니! 짧은 시간에 한 마디라도 더 하려다 보니 너나 엄마나 마음이 급하여 래퍼처럼 말이 빨랐던 것 같지?

 

  예전에는 3분 단위로 정해진 턱없이 비싼 국제전화요금 때문에, 통화료 신경 쓰느라 긴 통화는 엄두를 내지 못하던 때가 있었다. 마치 콜택시 미터기 찰칵거리는 소리에 심장 떨리는 기분과 같다고나 할까. 그런데 웬만한 사람은 다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는 요즘 세상에는, 국제건 국내건 통화료 때문에 통화를 오래 하지 못하는 일은 거의 없을 거다.

 

  너와 통화할 때도 마찬가지로 배터리가 방전된 경우를 제외하면 맘껏 통화를 하곤 했잖아. 그런데 엊그제는 훈련소의 규율에 의해 3분 통화라는 제약을 받고 보니, 새삼 네가 민간인 신분이 아니라는 것이 실감 났다. 세상 돌아가는 소식도 전해 주고 주의를 환기시키고 싶은 것도 몇 가지 있었는데 말 몇 마디 하니 시간이 다 되더라고.

 

  신병교육대 카페에 들어가 보면 훈련 성적 점수가 좋은 훈련병들은 집으로 전화도 하는 모양이더구먼. 너는 어째 편지 한 통 전화 한 통 없니. 어려서 동네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비비탄총(가짜 총)을 가지고 놀 때 그렇게 잘 명중시키던 실력은 어디로 간 거니. 네가 고3이 다 되도록 수능 문제집 대신에 입맛에 맞는 인문서나 과학서를 붙들고 있을 때조차 엄마가 잔소리한 적 없을 거다. 그리고 문제 4개 때문에 수능 만점을 놓쳤을 때도 엄마가 이렇게 서운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시절이 하수선하니 엄마 힘들게 하지 말고, 훈련 점수 올려서 전화통화 허락이라도 좀 자주 받아 내기를 명한다. ㅋㅋ.

 

  밭작물이 잘 됐다고 동네 분들이 칭찬들을 해 주셔서 으쓱했었는데, 사정은 사뭇 달라졌어.  밭에서 콩(메주콩)이 다 익어 콩깍지가 얼룩덜룩 시커멓게 변색이 되었지만, 태풍의 영향으로 비가 계속 오니까 수확을 할 수가 없었어. 그러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콩을 베어 놓고는 날씨가 궂어 널지는 못하고, 종이 박스에 담아 어쩔 수 없이 몇 날을 방치해 두었거든.

 

 그런데  그제 모처럼 해가 났기에 볕에 널려고 보니까 콩깍지가 흐물흐물하고 콩알도 거의 썩었어. 100알 중 성한 것은 서너 알이나 될까. 평생 처음 우리 손으로 지은 콩으로 콩국수도 해 먹고 청국장도 담가 보려고 했는데. 들깨도 지난번 태풍에 시계 10시 방향으로 쓰러졌어. 여름내 손으로 그 많은 잡초들을 하나하나 다 뽑으며 얼마나 알뜰살뜰 돌봐 왔는데. 하지만 괜찮아. 네가 무사히 훈련 잘 받고 건강하면 그런 건 아무래도 괜찮아.

 

  너와 국군 장병들을 위해 지은 시() ‘군대 판타지가 오늘 신문에 게재되었어. 나중에 자대 배치되어 컴퓨터 사용을 할 수 있게 되면 검색해서 읽어 보거라.

 

 

 

 

 

 

'군문의 아들에게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역사는 흐른다  (0) 2014.08.20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방한  (0) 2014.08.17
삶과 죽음  (0) 2014.08.09
어제는 비, 오늘은 맑음  (0) 2014.08.05
28사단 윤 일병의 짧은 생을 애도하며  (0) 2014.0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