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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문의 아들에게

역사는 흐른다

by 책벌레아마따 2014. 8. 20.

                                       역사는 흐른다

                                                                      2014년 8월 20일

 

  정작 장마철에는 마른장마로 비 구경이 어렵더니만 뒤늦게 가을장마로 물풍년이다. 사나흘 밤낮 구분 없이 비가 내리고 있어. 오늘 역시 온종일 비가 내리는구나.

 

 45일의 방한 일정을 무사히 마치신 교황님은 월요일 로마행 비행기에 오르셨어. 가시는 곳마다 화제가 만발했었다. 가난하고 외로운 이들의 상처를 보듬어 주셨고, 사랑과 용서와 화해라는 큰 가르침을 주셨어. 마태복음 1821, 22절의 말씀인 일곱 번이 아닌, 일흔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는 메시지를 한국민에게 마지막으로 남기고 떠나셨다. 엄마 역시 교황님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앞으로 더욱 크리스천으로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가리라 다짐해 본다.

 

  빈첸시오, 그제 새벽에 잠시 네 꿈을 꿨어.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는데 아무튼 어릴 적 모습이야. 오늘따라 네가 더 많이 보고 싶구나. 오늘은 초등학교 때 쓴 너의 일기를 들여다보며 쓸쓸함을 달래 보았다.

특히 2005년과 지금 2014년의 상황들이 왠지 모르게 연관성이 있는 듯 느껴져 눈길을 끌더구나. 초등학교 5학년생이던 너의 시각을 통해 다시 한 번 그 시절 그 시간들을 음미해 보는 것이 매우 흥미로웠다.

 

* 43() 맑음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이 선종하신 것에 대해 적으며 안타까움을 표시했더구나.

* 420() 맑음

베네딕토 16세 교황님 선출 과정인 콘클라베에 대해 적었더라. 많이 흥미로웠었나 보구나?

* 55() 맑음

Kingdom of Heaven을 감상했는데, 처음에는 헤븐(이라는 사람의)의 왕국이라고 생각했 다면서 영화가 재미있었다고 적었네.

* 620() 맑음

경기도 연천 전방부대 GP 김 일병 총기난사 사건에 대해 적었더구나. 전역을 한 달 정도 남겨 둔 희생자에 대한 안타까움과 사망자와 부상자 숫자까지 세세하게 적어 놓았어. 그러던 네가 지금 군인이 되었네.

* 71() 흐림

엄마가 시험을 위해서 공부하지 말고 꿈을 위해서 공부하라는 말을 하셨다. , 명언이 다. 명언.’ 이렇게 썼더구나. 명언을 잘 따라 줘서 정말 고맙다.

* 827() 맑음

삼성동 코엑스 인체 신비전을 관람하고는 많은 충격을 받은 모양이더군. 쇼킹 그 자체라고 써 놓았어.

 

  그 밖에도 사상 처음으로 실시하는 '토요 휴업일제'에 관한 이야기며 건교부 장관의 사임 같은 공직자 윤리에 관한 문제도 네 일기의 주제로 등장했어. 일진회 학교 폭력 서클에 대한 걱정도 담았고, 아빠가 퇴근길에 자동차 브레이크 고장으로 다리 난간을 들이받아 그 자리에서 폐차를 시킨 이야기도 있더구나. 아빠는 거의 멀쩡하셨지만 여하튼 우리 가족 최악의 사고에 관한 일들이 너의 일기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어. 역사는 흘러가는 것인가 보다. 슬픔도 기쁨도 세월 따라 잊히게 마련이야. 힘든 일들은 시간이 해결해 줄 거야.

 

 오늘 아빠가 서울로 올라가셨어. 내일 너의 신교대 수료식에 참석하기 위해서야.

 아들, 엄마가 함께 참석하지 못해 네게 정말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엄마의 건강 때문에 그렇다는 것을 물론 네가 잘 이해하겠지만, 그래도 엄마 가슴이 많이 아프구나. 어서 건강을 되찾아 네 면회도 갈 수 있게 되면 좋겠어. 오늘은 정말 울고 싶네. 엄마가 늘 흔들림 없이 강한 모습을 네게 보여 왔지만, 오늘은 엄마도 약한 마음이 자꾸만 든다. 군대에 입대해서 힘들고 고된 군사 훈련을 받고 수료식을 하는 너를 축하해 주러 가지도 못하다니. 하느님께서 왜 이런 시련을 주시는 것인지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봐야겠다.

 

 내일이면 이등병 계급장을 달게 되겠네. 진짜 사나이가 되어 가는구나. 거듭 축하 인사 전한다. 사랑하는 우리 아들, 정말 장하다.  멀리서 너를 응원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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