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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문의 아들에게

가난한 마음

by 책벌레아마따 2014. 9. 13.

                   가난한 마음

                                                    2014년 9월 13일 

 

  네가 군에 입대한 뒤로 밭 창고의 한쪽 벽면에 덧대어 그늘막을 만드는 공사를 했어. 그저 기둥이나 몇 개 세우고 그 위에 지붕만 얹은 단순한 모양새야.

 

 하지만 그 아래 야외용 돗자리를 펴고 앉아 참선을 하고 있노라면 마음이 그렇게 가난해질 수가 없다. 네가 없는 쓸쓸한 여름 한 철을 무심한 가운데 다리를 꼬고 앉아 그럭저럭 잘 지냈다. 창고 옆 계곡을 따라 힘차게 흐르는 물소리며 새소리며 바람소리 같은 자연의 하모니가 내 마음에 진정한 평화와 기쁨을 가져다주었다. 바로 앞에 있는 저수지에도 그득하게 물이 차올랐어. 저수지에 비친 산 그림자는 언제 봐도 마음을 설레게 만드는구나. 그러고 보니 계절이 바뀌어 이제는 가을이구나.

 

 시각, 후각, 미각, 청각, 촉각의 오감을 자극하는 대자연의 향연이 날마다 펼쳐지는 이곳이야말로 엄마에게는 무릉도원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친 몸과 마음과 영혼을 위한 힐링 공간이라고나 할까. 세상과 적당히 거리를 둔 채 스스로 택한 한가로움에 만족하고 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지상의 행복이며 축복이라 여기면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어. 아빠 건강하시지 스스로 모든 일을 잘 해 내는 아들 있지, 엄마도 아직 이렇게 살아 숨 쉬고 있지 여기서 더 무엇을 바라겠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구나. 주님의 섭리와 은총에 그저 감사할 뿐이다.

 

 네가 자대에 배치되자마자 전화를 한 뒤로 한동안 연락이 두절되어 마음이 놓이지 않다가 어제 너의 전화를 받고야 비로소 안심이 되었다. 훈련을 다녀오느라 전화할 틈이 없었다니 이제야 이해가 가는구나. 추석 명절을 함께 보내지 못한 건 작년에 이어 두 번째지? 네가 없으니 집안이 텅 빈 것 같고, 음식을 만들 의욕도 나질 않는다. 여하튼 부대 분위기가 좋고 선임들도 다 예의가 바르다고 하니 한시름 덜겠다. 그럴수록 너에게 주어진 책무를 다해야 할 거다. 자기의 본분은 망각한 채 권리만을 주장한다면 그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행동이 아니겠니. 너에게는 이런 말을 따로 할 필요가 없는 줄 잘 안다만, 노파심에서 한번 해 본 소리다. 환절기 건강에 각별히 유념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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