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군문의 아들에게

두더지 소탕 작전

by 책벌레아마따 2015. 4. 2.

                                        두더지 소탕 작전 

                                            201542

 

 

 엄마가 재미있는 이야기 들려줄까?

 

 엊그제 아빠가 자동차 보닛(a bonnet)을 열어 보더니 쥐똥 같은 게 있다며, 아무래도 쥐가 차 안으로 들어왔다는 거야. 다음날에는 집 마당 벚나무 아래에서 두더지가 굴로 쏙 들어가는 것을 봤대. 그 말을 듣고 나가 보니 아닌 게 아니라 나무 아래 굴이 나 있더구나. 밭에서 본 것과 같은 모양의 굴이야. 밭에는 두더지 굴이 엄청나거든.

 

 그런데 이상하지 않니? 집에서 두더지가 발견되다니. 쥐라면 모를까.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밭에 갔을 때 차를 세워 놓은 사이 아마도 두더지가 차 안으로 들어간 것은 아닐까 싶어. 그런 뒤 아빠와 함께 차를 타고 집으로 왔겠지. 그리고 아빠가 집안으로 들어온 뒤, 차 안에서 나와 마당에 굴을 파고 아예 눌러 앉으려 한 게 아닐까.

 

 두더지가 마당에 터널을 뚫는 건 일도 아닌데 그냥 놔두면 안 되겠더라. 두더지를 생포하기로 작정하고 굴 앞에서 연기를 피웠어. 한참을 피웠지만 허탕을 치고 대신에 해피를 풀어 놓았어. 혹시나 해피가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두더지를 잡지나 않을까 하고. 그런데 아무 성과가 없었어.

 

 그리고 오늘 밖에 나갔다 돌아와 차 안에서 내리는 순간 웃음보가 빵 터지고 말았다. 왜냐고? 우리가 외출한 사이, 해피가 두더지 굴을 신나게 파 댔나 봐. 어제 오늘 계속 비가 왔으니 땅은 질퍽거리지. 질척한 땅을 파 댔으니 얼굴이 어떻게 되었겠니? 상상에 맡긴다. 상상에 맡길 것도 없다. 군인들 위장 크림 바른 것과 흡사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세상에. 두더지를 잡으러 아예 자기가 두더지 굴로 들어갈 심산이었더라고. 오늘도 허탕. 온 동네 땅 밑으로 땅굴이 생긴 것은 아닐까. ㅋㅋ

 

 아들, 오늘도 종일 흐리고 비가 내리고 있다. 한때는 비를 좋아하던 때도 있었지. 인사동에 자주 가던 찻집이 있었는데, 비라도 내리는 날에 차 한 잔 마시면 왠지 낭만적이었거든. 또 언젠가는 비오는 날 종묘에 갔는데, 종묘 정전 처마에서 낙수 떨어지는 모습에 울컥하기도 했다. 태어나고 자란 고향이라서 그런지, 오늘은 왠지 서울이 그립구나.

 

 그리고 오늘 호남고속철이 개통되었어. 서울에서 광주까지 1시간 반이면 도착한다니, 이제 전라도도 반나절 생활권 안에 들어왔구나. 이곳도 고속철이 들어온다면 엄마가 춤을 추겠다. 너 때문에 그래. 네가 휴가 나올 때도 그렇고, 방학 때 집에 올 때도 그렇고. 한 번 오는 데 하루를 잡아야 하니, 교통편으로 따지면 대한민국에서 가장 불편할 것 같다. 네게 생고생을 시키는 것 같아, 이 점 너무나 미안하구나.

 

 휴가 마치고 귀대한 뒤로 전화 한 번 없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생각은 한다만. 네 밑으로 후임이 제법 들어왔다면서? 네가 배운 것들을 친절하게 잘 전수해 주거라. 서로가 얼마나 귀한 동료들이니. 몸 좀 따뜻하게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