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에 관한 에피소드
고대 희랍의 알렉산더 대왕은 유럽·아시아·아프리카에 걸쳐 광활한 영토를 아우르는 대제국을 건설했다. 거기다 마케도니아·그리스, 페르시아·인도 즉 동·서양의 문화를 융합한 헬레니즘 시대의 서막을 열었다. 당대의 내로라하는 인사들이 불세출의 젊고 용맹스러운 왕을 알현하기 위해 줄을 섰다. 그런데 정작 알렉산더가 만나고 싶었던 사람은 괴짜 철학자 디오게네스였다. 알렉산더가 친히 그의 처소를 찾았다.
그때 디오게네스는 왕의 행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볕받이에서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왠지 행색이 꾀죄죄해 보이는 그에게 알렉산더가 말을 건넸다. “소원이 무엇이오. 뭐든 다 들어 주겠소.” 그러자 디오게네스가 이렇게 응답했다. “조금 옆으로 비켜서 주시지 않으시렵니까. 왕께서 해를 가리고 계시오니. 바라는 것은 오직 그뿐이옵니다.” 희랍의 현자에게는 세계를 정벌한 영웅호걸도 안중에 없고 한줌 햇살이 더 소중했던 모양이다.
현대인들이 햇볕을 쬘 권리인 일조권에 민감해졌다. 과거에는 일조권에 대한 인식조차 부족했으나 환경과 건강에 관심이 급증하면서 일조권 획득을 위해 소송까지 불사하는 추세다. 피해가 미미하다면 금전적인 배상으로 끝나지만 극단적인 경우에는 다 지은 건물이라도 허물지 않으면 안 된다. 한편 유럽 여성들이 공원 잔디밭에 앉아 속살을 드러내고 선탠하는 광경이 남사스럽게 느껴지던 때가 있었다. 이제는 우리 눈에도 그리 낯설지 않은 풍경이 되었다. 뼈의 발육에 필수 성분인 비타민D는 햇빛을 만나 인체 내에서 합성된다. 생명 현상에까지 깊이 관여하는 햇빛의 가치를 값으로 정확히 환산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얼마 전에 읽은 신문 기사에 따르면 일본 환경성이 남성들에게 양산을 씌우는 캠페인을 펼치겠다고 공표했다. 찜통더위와 일사병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 남성들을 위한 고육지책일 터이다. 양산은 여성의 전유물이다시피 한데 남성들의 사용을 독려키로 한 결정은 신선한 발상으로 보인다. 사실 일본의 여름철 기후는 몹시 덥고 습하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햇볕 잘 드는 남향집을 선호하고, 볕이 좋은 날에는 베란다에 이불을 내다 너는 게 일상화되었다. 그럼에도 한편에서는 햇빛을 차단하려고 골머리를 앓고 있으니 왠지 아이러니하다.
하느님의 창조물 가운데 하나인 태양을 놓고 보더라도 당신께서는 대공무사의 표본이시다. 세상 모든 자녀들이 스스로 빛에서 멀어지지 않는 이상, 스스로 어둠에 머물지 않는 이상, 아무 차별 없이 골고루 빛을 뿌려 주시니 이 얼마나 감사한가.
2019년 7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