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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문의 아들에게

태풍이 지나간 들에

by 책벌레아마따 2014. 7. 28.

 

                             태풍이 지나간 들에

 

 

 사흘 전에는 지축을 뒤흔들 것 같은 기세로 밤새 강풍이 불어댔어. 밭의 농작물이 걱정이 되어 이른 아침 올라갔지.
‘모진 바람에 들깨며 콩이며 어린 묘목들이 다 쓰러졌으면 어쩌나.’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어떻게 그리 연약한 놈들이 죄다 살아남을 수가 있단 말이냐. 애써 가꾼 놈들인데 옆으로 다 넘어졌더라도 놀랐겠지만, 예상과 달리 멀쩡하게 서 있는 것은 더 놀라운 일이었다. 밭으로 올라갈 때 보니까 굵은 나무들의 가지는 툭툭 꺾인 채 길바닥에 널브러져 있더구먼.

 

 연약하면 연약한대로 다 살게 마련인가 보다. 농사란 정말 하늘이 돕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인간이 아무리 용을 써도 결국 비와 바람과 햇빛이 없으면 결코 작물은 자랄 수 없어. 우리처럼 취미 삼아 하니까 이 정도이지 만약 업으로 한다면 노심초사 마음 편할 수 없는 것이 바로 농사이다.

 아들, 불볕더위가 계속되고 있다. 일 년 중 가장 더운 시기에 연일 혹독한 군사 훈련으로 체력이 고갈된 것은 아니니? 그래도 네가 입대한 후로 13일이 흘렀어. 다시 말해 병역 기간 639일 중에 2퍼센트가 지나갔다는 뜻이다.

 

 보통 2퍼센트가 부족하다는 말을 많이 하잖니.그런데 네가 군 복무를 마치려면 98퍼센트가 부족하구나. 그래도 2퍼센트의 시간이 지난 게 어디니.

 

 보고 싶은 너를 볼 수 없는 것이 이렇게 힘든 일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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